빌립보를 떠난 바울 선교팀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서 데살로니가로 갑니다.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는 약 150킬로(KM)떨어진 곳이었습니다. 바울 선교팀은 그리스 반도 북부를 동서로 잇는 간선도로인 에그나티아 고속도로(Via Egnatia)를 통해 이동했던 것입니다. 바울의 일행이 이동했던 자세한 과정은 생략되어 있지만 경로를 밝힘으로 그들이 로마의 간선도로인 에그나티아를 이용하여 이동했던 것을 밝힙니다.
데살로니가(Thessalonica; Θεσσαλονίκη)는 에게 해 북서쪽 터마 만(Themaic Gulf) 끝에 위치한 마케도니아의 주요 무역항입니다. 데살로니가는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기 전 알렉산더의 헬라제국에서 마케도냐 지역의 중심도시였습니다. 데살로니가(Thessalonica)라는 도시 이름은 기원전 315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부하인 카산더 장군은 새 도시를 건설하고 자신의 아내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을 데살로니가로 불렀습니다. 그의 아내 데살로니가는 필립 2세의 딸이요 자신의 주군 알렉산더 대왕의 이복동생이었습니다.
마케도니아 지배를 받던 데살로니가는 B.C.168년에 피드나 전쟁(Battle of Pydna)에서 로마가 마게도냐를 무찌른 후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 후 B.C. 148년에 마케도니아의 수도가 되고 로마 총독이 주재하는 도시가 됩니다. 이 때부터 데살로니가의 황금기가 시작됩니다. 데살로니가는 '전 마케도니아의 어머니'라는 별명을 가질 만큼 마케도니아를 대표하는 도시 역할을 합니다.
데살로니가는 항구도시입니다. 바다와 연결된 항구도시와 두강(바다르 강과 비스트릿자 강) 그리고 로마의 주요 간선도로인 에그나티아 고속도로(Via Egnatia)가 교차하는 데살로니가는 고대 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를 방문할 때 데살로니가는 고린도와 더불어 국제 상업 도시로 다양한 인종들이 몰려와 사는 국제 도시였습니다. 유대인들도 다시 이주하여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바울이 방문했던 회당을 위시해서 데살로니가에 다수의 회당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사도 바울이 도시를 방문했을 때, 데살로니가는 빌립보 보다 더 큰 도시였고 헬라문화가 번성했습니다. 데살로니가는 자유도시(Civitas Libera)의 지위를 누렸습니다. 시의회에서 선출된 5-6명의 읍장들(행17:6)이 자치적으로 시정을 돌보았습니다. 데살로니가의 상류층은 로마의 보호와 특권을 누렸고 데살로니가의 하층민은 로마와 기득권층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바울 선교팀이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할 때 데살로니가에 토착 종교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주로 세 종류의 종교들이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우상을 버린 것을 바울이 칭찬합니다(살전1:9). 이 종교들이 데살로니가 선교와 목회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먼저는 로마 황제숭배 종교입니다. 로마 공화정이 제정으로 변화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율리우스 시이저(Gaius Julius Caesar)황제를 신으로 숭배했습니다. 시이저가 암살된 후에는 그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를 '신의 아들'로 부르며 숭배했습니다. 이러한 황제 숭배 분위기는 데살로니 시민들의 폭동(행17:7) 이유가 되었습니다.
다음은 그리스 신화의 영향이었다. 데살로니가는 디오니소스를 숭배했습니다. 디오니소스(Διόνυσος)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으로, 로마 신화에 술의 신 바커스입니다.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의 아들로써 포도주를 관장하는 신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인들은 이 종교의 영향으로 술을 탐닉하고 무분별한 성행위를 일삼아 데살로니가는 타락한 문화를 갖고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서신은 이 타락을 경고합니다(살전4:7).
셋째는 카비루스(Cabirus)의 숭배였습니다. 카비루스는 하층민의 권리를 대변하다가 암살당했습니다. 데살로니가 민중들은 자신들을 대변한 카비루스를 영웅적 순교자로 추앙하며, 그를 신격화했습니다. 그들은 카비루스가 부활해서 그들을 위해 새로운 세상을 가져올 것으로 믿었습니다. 이 종교의 영향으로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바울이 전하는 부활과 심판 메시지를 받을 때 개념은 쉽게 이해했지만 곡해도 했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서신서에는 부활과 종말 신앙에 대해 많은 언급이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와 관련된 두 사람 야손(Jason)과 아리스다고(Aristarchus)가 등장합니다. 야손(행17:5, 롬16:21)은 히브리어 여호수아의 헬라식 이름입니다. 마카비서가 비교적 상세하게 야손을 소개합니다. 야손은 70문도 중에 하나이며 바울의 고향 다소 출신이었답니다. 그리고 훗날 바울이 그를 다소의 감독으로 임명했답니다.
아리스다고(행19:29,20:4)는 데살로니가 출신으로 바울과 로마행을 동행합니다. 성경은 아리스다고를 신실한 바울의 동역자로 소개합니다. 윌리암 램지(William Ramsay)나 F.F. 브루스(Bruce)는 아리스다고가 바울의 시종(侍從)으로 바울과 동행했다고 말합니다. 동방정교회와 카톨릭의 전승에 의하면 아리스다고는 예수님의 70문도 중에 하나이며 훗날 아파메아의 주교로 봉직했다고 전합니다. 데살로니가 사역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이 더욱 견고하게 세워지는 것을 확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