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트하우스선교회 대표 박광철 목사
(Photo : 기독일보) 솔트하우스선교회 대표 박광철 목사

1) 주의 인격과 사명과 사역을 닮아가되 개인에 따라 독특하고 다양하다. 어떤 영적인 지도자를 그대로 닮는 것이 아니다. 일부 설교자들은 소위 "거룩한 목소리"를 낸다거나 이상한 몸짓을 하는 것을 흉내내기도 하는데, 우리는 다만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야 한다.

2) 우리가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설교자들은 우리가 "작은 그리스도"라는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다만 용서받은 죄인이며 결코 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 그것이 자칫 스스로 메시야라거나 성령이라고 주장하는 이단사상으로 변할 수 있다. 다만 사람들이 우리의 선하고 희생적이고 아름다운 믿음의 삶을 보고 그리스도를 보는 듯 하다고 말할 뿐이다.

3) 초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다. 힌두교의 구루들처럼 일종의 "신령"이 된다거나 "활불" 즉 살아있는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일부의 사람들이 이른 바 "오체투기"라는 것을 감행한다. 사원이 있는 곳까지 수 개월에 걸쳐서 다섯 발자국을 걷고 한번 땅에 온 몸을 엎드리고 다시 다섯 발자국을 걷고 엎드리면서 그 먼 거리를 고행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죄가 용서받고 거룩한 사람이 될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인간은 여전히 약하고 유혹에 취약한 존재들이다.

4) 더 종교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종교 자체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지 못하고 아무도 구원할 수 없으며, 다만 영성계발을 통해서 보다 성경에 부합하는 믿음의 성숙을 이루는 것이다. 성경에서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사람들은 당대에 가장 종교적이고 가장 경건하다고 알려졌지만 실상 그들은 종교적인 위선자이기 때문에 예수께로부터 무서운 책망을 받았다. 진정한 영성은 종교 예식과 형식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이다.

5) 분리주의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바리새인이라는 단어 자체가 "분리주의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자칫 위선자, 이중인격자, 심판자가 되기 쉽다. 스스로 죄에서 분리된 사람이라는 착각 때문에 종교와 삶과의 사이에 괴리가 생기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향기와 빛을 드러내야 한다 (마 5:16).

3. 영성계발의 긍정적인 의미

1) 간단히 말해서 영성계발은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는 것이며 성령의 열매가 풍성해야 한다. 즉 영성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지만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드러나며 성령의 열매가 풍성하게 맺힐 때에 그의 영성을 이해하게 된다.

2) 전인격적인 면에서 영적으로 보다 성숙해지는 것이다. 이것은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처럼 말과 외모 또는 종교예식에서 드러나는 경건함이 아니라 삶 전반에 걸쳐 그리스도로 충만한 것이다.

3) 그리스도의 몸 즉 교회 안에서 사역과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즉 개인적으로 인격적인 변화, 사회적으로는 인간관계와 사역, 그리고 정신적으로 온유함과 오래 참음 등 모든 측면이 관련된다.

4) 이것은 한 사건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긴 과정이며 지름길이 없다. 성도는 종종 성령의 충만을 받거나 영적으로 예민한 때가 있지만 그것이 지속적인 것이 되어야 진정한 영성으로 이해한다.

5) 신속한 영적 성숙을 위한 어떤 기술이나 방법 또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예를 들어서 일정 기간의 제자훈련 과정을 거친다거나 특별한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성품이다.

6) 예수님처럼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즉 사도 요한이 지적한 대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7) 예수님처럼 이웃을 용서하고 잊어버리는 것이다 (고후 3:18, 엡 4:13, 골 3:9-10). 진정한 용서는 자기가 용서한 죄와 허물에 대하여 잊어버리고 다시는 기억하지 않는 것이다.

에즈베리 신학교의 Robert Mulholland 박사는 영성계발이 "자판기"가 작동하는 것 같은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자판기에 일정한 금액의 동전을 넣고 물품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그런데 원하는 물품이 나오면 만족해 하지만 나오지 않으면 기계에 발길질을 하고 다른 자판기로 가는 것처럼 하나님께 무얼 요구하고 곧 응답이 없으면 하나님께 발길질을 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바른 영성은 하나님으로부터 즉각적이고 만족한 어떤 형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보다 친밀한 인격적 만남을 통해서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