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다가왔습니다. 잠시 짬을 내어 고향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너희 어머니 건강 때문에
올 해부터 모든 명절과 추도식에
서울에 있는 네 형 집에서 모이기로 했다”고
아버지께서 선언하셨을 때,
어머니는 방 한 켠에서 돌아 앉아 우셨다지.
“평생 해 왔으니 조금 더 하다가 죽게 내버려 둬!”하고
고집하셨다지.

명절이 가까워오면
이제는 완전히 기역자로 꺾인 허리를 움켜쥐고
이 구석 저 구석 뒤져
꾸러미를 만드신다지.
추석이 가까워지면
뒷산 밤나무 밭에서 사신다지.
“그냥 두고 가만히 좀 있어!”라고
아버지께서 핀잔하시면,
“밤나무 아래에 있으면 살맛나는데, 왜 못하게 막는대!”라고
대꾸하시고는
다시 휘청휘청 언덕을 기어오르신다지.

늘 그러셨지.
옛날, 도시에서 자취하는 자식들 먹이려고
토종닭 한 마리 잡아 오셔서 푸짐한 삼계탕을 끓여 내놓으실 때,
“엄니도 함께 드셔” 말씀드리면,
“니들이나 먹어. 나는 집에서 맨날 먹는다”라고 대답하곤 하셨지.

이제는
부모님 드시라고 자식들이 만들어다 냉장고에 넣어 둔 음식을
당신이 만드신 것인 줄 알고
서울 가는 꾸러미에 싸시는 어머니.
어머니 마음에는 항상 부족했던 추석
자식들에게는 항상 풍족했던 추석
어머니의 추석.

웬일일까?
이국땅에서 한 가위 달을 보는 내 눈에는
계수나무와 토끼 한 마리가 아니라
기역자로 구부러진 허리의 내 어머니가 보인다.

(2007년 9월 23일)

글/김영봉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