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려서부터 배운 사고방식인지는 모르나 위인전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위인은 흑수저입니다. 시골에서 자랐고, 서자로 태어났고, 인간의 약한 부분을 가져다 붙입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하면 이런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니엘처럼 잘 살자고 외칩니다. 그가 목숨 걸고 기도하며 사자 굴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충성했으니. 다니엘의 성결함과 확신과 기도의 삶을 본받아야 한다고 외칩니다. 그러나 이런 접근의 약점이 있습니다. 다니엘이란 인간의 위대성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니엘은 왜 이렇게 강했나? 의지가 강해서, 끈기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 들어갈 때 나이가 85세로 추정이 됩니다. 15세 정도에 끌려와서 70년 지났기 때문입니다. 이런 나이에 출세할 것도 없습니다. 평생의 삶에서 하나님을 만났기에 이런 결정 내리고 산 것입니다. 복음의 핵심이란 어떤 사람의 성격이 좋다, 나쁘다가 아닙니다. 그 사람이 예수님 만났는가? 아닌가? 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인생은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값비싼 향유를 깬 마리아가 있습니다. 그의 헌신을 배우자고 합니다. 그러려면 나사로의 죽음을 통한 부활을 배워야 합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이 대속의 죽음을 감당해야 함을 알아 향유를 깨 부은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향유를 깬 것은 마리아가 아니라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몸이 깨지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향유이십니다. 자신을 깨서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리아의 헌신은 엄밀히 말하면 자기 몸을 깬 예수님에 대한 마리아의 찬송일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거룩해집니다. 진짜 거룩은 말씀이란 밑그림을 가지고, 순종을 통해서 드러나는 결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룩이 가능하려면, 말씀의 밑그림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밑그림을 토대로 순종해 나가면, 아름다움이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착한 행실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으로 부딪히면,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제자들이 주님께 "주님! 무엇을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겁니까?"묻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나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주님을 믿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이 일하심으로, 더 많은 것을 이루어내는 능력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사역의 대상보다 사역자의 믿음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슬로건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만남입니다. 기독교는 거룩해지자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만나면 영광스런 삶을 살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말씀의 순종을 통해 거룩해지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 만나면 믿음으로 살 뿐만 아니라. 환경과 조건을 뛰어넘어 기적의 삶을 살게 됩니다.
[김병규 칼럼]하나님의 일이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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