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새벽기도회에서 민수기를 읽는 중에, 그 유명한 구름 기둥에 대한 말씀을 읽었습니다. 이집트에서 나와 가나안 땅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 진중에 구름이 머물러 있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모세와 아론은 구름이 진중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몇 달이든 상관없이 그대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구름이 움직일 때에만 진행했습니다.

이 광경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한 민족의 지도자로서,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따르지 않고, 구름을 통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따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때로 수개월 동안 구름이 움직이지 않고 있을 때, 모세는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때로, 일기가 불순하고 행로는 험하며 사람들은 지쳐 있는데, 구름이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이고 있을 때, 모세는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냥 무시하고, 자신의 판단 대로 하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에 순종하고 살려는 노력이 인간적인 면에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느낌이 오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것이 마치 ‘구름 잡는 것’처럼 보일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는 구름을 보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모세를 두고 비판한 사람도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이스라엘 진중에 드리운 구름이나 다른 구름이나 별로 다를 바 없어 보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 이렇습니다. 누구에게는 너무도 분명해 보이는 하나님의 뜻이 다른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일처럼 보입니다.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때로는 멈추어 서야 할 것 같은데, 그대로 진행해 나가라고 합니다. 또 때로는 진행해야 할 것 같은데, 구름이 요지부동입니다. 그럴 때마다 얼마나 답답하고 초조했겠습니까? 저 같은 인내심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일처럼 느껴집니다. 모세는 이렇게 40년을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40일이면 갈 수 있는 길을 40년 동안 방황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있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었겠다 싶었습니다.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가는 것이 중요하며, 목적지에 이르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여기서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저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리 자판을 두들기고 있습니다. 어느 사이에 ‘속도’에 중독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대에 살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가는 것은 매우 큰 도전입니다. “네 인생의 주인은 바로 너다”라고 세뇌시키는 이 사회에 살면서,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당신이십니다.”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것에 순종하는 것은 실로 ‘문화 전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 저도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으로 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에 순종하는 것에 모든 성패가 걸려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제 마음을 다스려 주시고, 제 손과 발을 잡아 주셔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하게 하소서. 아멘.” (2007년 9월 16일)

/글 김영봉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