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전라도 순천에서 태어나 남장로교 선교부에서 컸습니다. 옛날 선교사들은 오래 살지 못했는데요. 특별히 선교사 아이들의 고생이 심했습니다. 수돗물이 없으니까 물을 제대로 먹지 못해 이질로 죽기도 하고요. 우리 어머니는 소망이 없다고 느껴질 때면 집 뒤에 있는 선교사들의 묘지에 가서 사명을 되새기곤 했습니다."
웨스트 힐 장로교회(담임 오명찬 목사)는 지난 3일부터 5일(주일)까지 제임스 린튼 (James Linton)를 강사로 '신년 선교 부흥회'를 개최했다.
린튼 선교사는 부흥회를 통해 선교의 우선적인 원칙과 한국의 복음 전파를 위해 헌신했던 남장로교 선교사들의 선교 열정을 소개했다.
그는 "선교는 하나님께서 이미 보여주신 길을 따라가는 것인데, 사도들의 선교를 기록한 사도행전은 세계 선교의 교본과도 같다"며 "선교는 나의 생각과 방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바탕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방법으로 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린튼 선교사는 "남 장로교 선교사들이 한국을 전도할 때, 그들은 기초부터 든든히 세웠고, 상황과 환경을 넘어 선교를 위해서라면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며 "복음 전파를 목적으로 말씀을 따라 서로 사랑하고 협의하면서 모든 기틀을 세울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듯, 성경을 통해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다"며 "나의 방식과 판단의 기준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4대째 한국 선교에 매진하고 있는 린튼 가문의 증조할아버지 1대 유진 벨은 1895년 가난한 조선에 도착해 교육과 의료 사역에 매진하며 복음을 전했고, 2대 할아버지 윌리엄 린튼은 1912년 미국 조지아 공대를 수석 졸업하고 21세에 미국 남장로교 최연소 선교사로 조선에 파송돼 교육선교에 헌신하다 현 한남대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학장으로 섬겼다. 3대 부친 휴 린튼 선교사와 모친 베티 린튼 선교사는 순천 결핵 재활원을 운영하며 30년 이상 결핵퇴치사업에 기여한 공로로 1996년에 국민훈장을 받기도 했다.
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제임스 린튼 선교사는 1971년 도미하여 학업을 마친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대전에서 선교했으며 1995년부터는 북한의 지하수 개발, 우물파기 선교를 하고 있으며 35년 동안 미국에서 건축사업을 하다 현재는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자동차 부속을 뜯어 우물 파는 기계를 만들어 배로 실어 나르면서 온 가족이 북한 선교를 하고 있다.
제임스 린튼 선교사의 형 스테판 린튼 선교사는 1994년 유진 벨 재단을 설립해 북한 의료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동생인 인요한 선교사는 서울 세브란스병원 외국인 진료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선교 부흥회를 개최한 웨스트힐 장로교회 오명찬 목사는 "린튼 가문은 한국을 사랑한 영적인 은인으로 생명을 다해 대한민국과 북한을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을 대신하고 있다"며 "성공이 아닌 선교를 위해 세워진 교회임을 기억하면서 그리스도의 증인 된 사명을 감당하는 한 해가 되자"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