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독교가 불교권에 선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
성철은 '우주 창조자 하나님'이 '내 품 안에 계시고', 그래서 나와 하나님은 일체라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성철은 창조자, 즉 초월자가 없는 전통 불교철학의 '자기초월(無我, 非我)'의 목표에 머물지 않고, 한층 더 상승시켜 … [김칠곤 칼럼] 자신의 시간을 알고 사는 것이 지혜다
필자가 베이비 붐 시절에 태어났던 어린시절에 어른들에게 자주 질문을 받았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너는 이 다음에 크면 뭐가 될 거야!"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질문은 과거시대에 살았던 어린아이들 뿐 아니라 현대를… 유동근 목사의 호세아서 강해(2)
호세아는 북조 이스라엘을 위한 예언자이지만 네 명의 남조 유다의 왕들을 들어 그의 예언 시기를 설명한 것은 선지자들 사이에 유다를 중시하는 사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여러 선지서들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지자 … [심관식 컬럼] 웃는 생활의 유익
하나님께서는 사람만이 웃을 줄 알게 하셨습니다.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는 말도 있습니다. 웃는 집 문안에 많은 복이 들어온다는 옛 말이지요. 웃음에는 긴장을 풀어 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 상대방의 경계심을 풀어 줍니… [유해석 칼럼] 이슬람의 형성에 영향을 끼친 다양한 종교들
이슬람이 아무리 "아브라함도 예수도 무슬림이었고, 이슬람은 원래부터 존재했던 종교"라고 말할지라도, 이슬람은 무함마드에게서 시작된 종교다. 개신교 선교 인물사(4) 도날드 A 맥가브란(1897-1990)
개신교 선교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었던 인물들을 현대 선교의 역사적 관점으로 조명해 봄으로써 오늘날의 선교전략 연구 및 실행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본 자료는 양태철 목사(GMI(GRACE MINISTRIES INTERNATIONAL; 은혜한인교회) 선교… [김성민 칼럼] 우습게 보았던 뒷산의 아름다움
내가 사는 동네 바로 뒤에 LA에서는 제법 높다는 Wilson 산이 있다. 하지만 서북미에서 오랜 기간 살았던 나의 눈에는 매우 헐벗은 산이었다. 하루는 산을 잘 아시는 분과 함께 그 산에 올랐다. 10마일을 걸으며 땀을 흘렸지만 여전… [이석철 칼럼] 가을에 생각해 보는 인생
인생에 대해 논하자니 너무 거창한 거 아닌가 하는 부담감이 들었다. 하지만 가을인데 뭐 어떠랴 싶다. 한번쯤 무거운 주제에 대해 생각을 해도 좋을 사색의 계절, 가을 아닌가.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의 소원(골로새서 1:18∼29)
과거에는 하나님과 원수 사이였지만 예수님을 통해 회개하고 죄사함을 얻고 나면,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되는 화목의 관계가 형성됩니다. 이것이 교회가 하는 일입니다. 교회 와서 목자를 통하여 성령의 깨우치심을 따라… [유해석 칼럼] 이슬람의 형성에 영향을 끼친 다양한 종교들
이슬람이 아무리 "아브라함도 예수도 무슬림이었고, 이슬람은 원래부터 존재했던 종교"라고 말할지라도, 이슬람은 무함마드에게서 시작된 종교다. [남산편지] 위대한 용서
"너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을 죽였지. 내 살점 하나하나가 다 아프다. 이제 우리 모두는 예전처럼 살아가지 못하겠지. 그러나....... 우리는 너를 위해 기도한다. 너를 용서한다. 증오는 결코 사랑을 이길 수 없다. [최종천 칼럼] 욕망을 다스리는 것이 승리입니다
인생에게는 누구랄 것 없이 욕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욕망이라는 것이 반드시 부정적 의미일 필요는 없습니다. 누구나 그 마음에 일어나는 욕구를 통해 그 삶을 유지해 가고, 또 무엇인가를 이루어 갑니다. 마음에 … [민종기 칼럼] 폭풍의 언덕, 아나돗
예레미야 선지자의 고향 아나돗은 동쪽 계곡에서 불어오는 열풍이 지나가는 폭풍의 언덕입니다. 그러나 철따라 부는 폭풍보다 더 커다란 폭풍이 불었으니, 그 마을에서 예언하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이었습니다. 선지자는 … [김한요 칼럼] 응답하라 2015
우리 교회 어르신들을 모시고, 미주 동부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펜실베이니아 랭커스터에서 크리스천 뮤지컬 “요셉” 관람, 포코노의 가을 단풍에 젖었던 일, 미국을 미국 되게 했던 유서 깊은 도시 필라델피아의 자유… [김영길 칼럼] 사람을 죄인으로 볼 때 얻는 유익들
누군가 우리를 죄인으로 취급할 때에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모든 사람들을 죄인으로 여겨야한다고 가르칩니다. 이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명제는 기독교의 역설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