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속담처럼, 큰 고래 두 마리인 미국과 중국의 패권싸움에 새우등이 아니라 세계의 등이 터질까 걱정이다. 위대한 미국 재건을 외치며 당선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시진핑 주석이 제창한 ‘일대일로(一對一路)’ 정책은 마치 치킨게임을 하듯이 상대를 향해 무섭게 내달리고 있다.
냉전 체제 이후 세계 유일의 패권국가가 된 미국은 중국을 값싼 생활용품이나 만드는 ‘세계의 공장’쯤으로 여겨 왔다. 하지만 어느새 중국은 블랙홀처럼 세계의 자원과 기술을 빨아들여 미국과 대등한, 아니 어쩌면 향후 몇 년 안에 미국을 뛰어넘을 수도 있는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중국은 패권 경쟁의 강력한 도전자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고, 미국은 그 자리를 내어 줄 생각이 없다. 이 두 나라의 갈등은 관세부과를 통한 무역전쟁 뿐만 아니라, 남중국해의 영토 분쟁 등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갈등이 물리적인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으리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미국과 중국 사이의 전쟁은 필연적인가? 하버드 케네디 스쿨의 학장을 지난 미국의 국가 안보, 국방 정책 전문가인 그레이엄 앨리슨은 “예정된 전쟁”을 통해서 향후 수십 년 안에 두 나라가 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아주 높지만, 그렇다고 전쟁이 필연적인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 한다.
그는 두 나라가 ‘투키디데스의 함정(Tuchididdes Trap)’에 빠져 있다고 말한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새롭게 부상하는 신흥 세력이 지배 세력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위협을 해올 때 발생하는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혼란 상황을 지칭하는 말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투키디데스는 자만심으로 한껏 부풀어 오른 아테네는 더 많은 발언권과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고 느꼈고, 스파르타는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그때까지 누려온 자국의 위상을 지키기 위한 단호한 태도로 전쟁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결국 30여 년에 걸친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의 유혈참극으로 그리스 문화의 황금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그레이엄 앨리슨은 지난 5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와 비슷한 사례는 열 여섯 차례가 있었고 그 중 열 두 사례는 전쟁으로 귀결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긴장관계에 기름을 끼얹는 세 가지 주요 동인으로 이해관계, 두려움, 명예를 꼽았다. 중국의 ‘신흥 세력 증후군’은 오만함이 될 수 있고 미국의 ‘지배 세력 증후군’은 비이성적 두려움으로 인해 피해망상을 가져올 수 있다. 역사상 열 여섯 번의 패권 경쟁에서 열두번이 전쟁으로 이어진 것처럼, 우발적인 사건이 대규모 충돌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저자는 미국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새로운 대중국 전략이 아니라 일단 멈춰 서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한다. ‘포용하되 견제한다’는 과거의 이중전략은 더 이상 중국에게 효과가 없다. 두 나라가 공유하고 있는 핵심적인 국가이익은 두 나라를 분리시키는 국가이익보다 훨씬 크다. 두 나라는 오히려 세계의 종말을 불러올 핵전쟁, 핵 무정부상태, (특히 이슬람 성전주의자들에 의한) 세계적인 테러리즘, 그리고 기후변화와 같은 네 가지 ‘초대형 위협’에 힘을 합해야 한다. 이 네 도전은 해결할 수 없는 난제처럼 보이지만 이를 통해서 미국과 중국은 모두에게 득이 되는 기회와 선택을 할 수 있다.
우려되는 점은 세계 경제 및 제반 사항이 여전히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중국의 ‘대국굴기(大國崛起)’ 계속되려면 지금까지와 같이 지속적인 성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중국의 저성장 쇼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 정책은 중국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우방이라고 여겨졌던 나라들과 갈등을 유발시키고 있다. 한국은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더 가깝고 정치적으로는 미국과 뗄 수 없는 관계다. 저자가 이 책의 마지막에 인용한 세익스피어의 말처럼 우리의 운명은 우리의 별자리(미국과 중국)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북을 포함한)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