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교육, 시켜야 하나 말아야 하나'

미국에서 자녀를 키우는 한국 부모들은 자녀의 한글 교육에 대해 한번 쯤은 고민을 해봤을 것이다. 한동안은 '영어를 잘해야 성공한다'는 인식으로 인해 한글 교육은 뜸했다. 혹시라도 한국말을 쓰는 것이 영어 교육에 방해가 될세라 부모들은 서투른 영어라도 써가며 환경을 만들어주기에 힘썼다. 하지만 최근에는 한국어를 가르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는 부모들이 늘어났다.

한국학교는 미국에 사는 한인들에게 한글과 한국 문화를 가르쳐주고 있는 기관이다. 교회에서 한글을 가르쳐 주는 것에서 시작한 경우가 많고 장소 등을 지원받을 수 있어 한국학교는 교회 부설로 되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글 뿐 아니라 사물놀이 등 한국 전통 문화를 가르치고 있는 한국학교는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서북미 지역의 한국 학교 현황은?

서북미 지역에는 105개의 한국학교가 있다. 이곳에는 6백여명의 선생님과 3500여명의 학생이 있으며 재미한국학교 서북미지역협의회가 이들을 대표하고 있다. 재미한국학교 서북미지역협의회는 알라스카, 워싱턴, 오레곤, 몬타나, 아이다호등 5개주 한국학교를 총괄하고 있다.

교회 부설 학교가 95%이며 통합학교는 워싱턴 주 2곳, 알래스카 1곳 등이다.

-한국학교 협의회 회장은 어떻게해서 맡게 됐는가?

원래는 한 교회를 목회하고 있었다. 목회자 입장에서 보니 한인 아이들의 정체성이 없었다. 15년 전 교회 내에 한국학교를 만들었고 협회에 가입해 활동을 시작했다. 한글을 교육하니 학부모도 아이도 좋아했다. 또 한국학교를 통해 비전을 주니 이중언어를 구사하며 많이 발전해갔다. 협의회 회장이 된 후로 교회는 사임하고 협의회 일에 전념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학교에 대해 협조적이었고, 내 뜻을 알아준 교인들이 수긍해줬다.

-한국학교는 어떤 내용을 교육시키는가?

한글 읽고 쓰기를 기본으로 가르치고 이 외에 예능적인 것을 가르친다. 고전무용, 탈춤, 태권도 등 한국 고유 문화를 전수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교육을 통해 정체성을 심어주고자 한다.

-한국학교 운영은 어떻게 되고 있는가?

학생들로부터 받는 등록비로 운영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한국 정부에서 나오는 기금과 등록 학교들로부터 거두는 회비를 합해 각 학교에 배분, 지원해주고 있다. 협의회에 가입되어 있고 협의회가 주관하는 행사에 꾸준히 참여하면 어떤 학교든 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협의회가 하는 일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크게 나누면 학생과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행사가 다르다. 학생을 위한 행사는 한국어 이야기 경연대회, 글짓기 대회, 합창대회, 학예경연대회 등이 있다. 아이들을 위한 행사는 보통 3-6월에 이뤄지며 6백여명 이상이 참석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참여 학생 규모가 늘어나고 있다. 이것으로 비춰볼 때 한국학교에 대한 학부모와 학생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교사를 위한 행사에는 교사 연수회, 사은의 밤, 교육기금 모금의 밤 등이 있다. 매년 개최하는 교사 연수회는 좀 더 좋은 강사진, 강의 장소를 마련해 한국학교 교사들이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 되도록 하는데 힘쓰고 있다.

-한국학교에 참여하는 학생 비율은 전체 서북미 한인 중 얼마나 되는가?

공식적으로 집계된 자료는 없다. 하지만 협의회가 주최하는 행사 참여도를 볼 때 관심과 참여도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3-4년 전에는 참가자 수가 2-3백명이었는데 최근에는 6-7백명으로 늘어났다. 한류 열풍이 한글 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마음을 많이 움직여 준 것같다. 그리고 한국학교의 교육효과가 주변으로 점점 퍼지고 있는 것 같다. 이제 한글 교육의 필요성은 대부분의 부모들이 느끼고 있다. 하지만 주말마다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줄 시간을 내기 힘들어한다. 아이들 픽업 때문에 교육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아쉽다.

-한국학교 교재는 어떤 것을 쓰고 있는가?

본국의 국정 교과서와 자체 발간 교재를 비롯해 부교재를 제작해 사용하고 있다. 본국 국정 교과서는 매년 본국 재외동포재단을 통해 일정 수량을 공급받고 있다.

-요새는 무조건 한글 쓰기를 가르치기보다는 피닉스 등 보다 효율적인 교육 방법이 도입되고 있다고 하는데, 교육 현장의 변화는 어떤가?

시청각 자료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듣고 외우기 쉬운 노래를 통해 한글을 가르치고 있으며 한글카드 등을 통해 흥미를 높이고 있다.

또한 쓰기 보다는 읽고 말하는 것을 먼저 가르치고 있다.

-선생님과 학생의 비율은 얼마나 되는가?

현실적으로 볼 때 선생님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한국 학교의 가장 큰 어려움이 교재와 선생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 학교가 변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학교가 각 교회별로 따로 운영됐지만 이제는 학교들이 지역별로 통합돼야 한다. 각 학교의 재원과 인재들이 모이면 질적으로 향상된 교육을 실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학교 선생님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무엇보다도 아이를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사명감을 갖고 자기 노력을 기울여 아이들에게 교육시킬 수 있어야 한다.

-한국학교의 중요성을 말해달라.

한글 교육,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영어 하나만 잘해서는 안되는 글로벌 시대가 왔을 뿐더러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것은 바른 정체성을 세워주는 길이기도 하다.

한국어를 배운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은 엄연히 차이가 난다.

초창기에 한국어를 배운 학생들이 지금은 어른이 됐다. 한국어를 배운 아이들은 활동 영역이 주류사회를 포함해 한인사회까지이다. 그리고 정체성과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한국학교에 대한 감사가 있다. 어떤 학생은 커서 한국학교 교사로 봉사하는 경우도 있다.

이민 초창기에는 한글을 배우다가 영어를 못하게 될까봐 집에서조차 부모들이 영어로만 대화했다. 하지만 한국말을 모르면 정체성에 혼란이 온다.

한국인과는 어울리지 않는 1.5세, 2세가 있다. 그들은 '미국인'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세우고 싶어하지만 결국은 미국 안의 '한국인'임을 깨닫는다. 이 때 한국어를 모르면 아무 곳에도 갈 수 없는 왕따 아닌 왕따가 된다. 한국 문화 속에 뒤늦게 들어오고 싶어 하지만 낯설기 때문에 속하지 못하고 방황한다.

어떤 2세는 이런 사람도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건축가로서 활동하고 있었지만 한국말을 못했다. 외국 교회를 다니다가 한국 교회에 찾아왔는데 전혀 어울리지 못했다. 어렸을 때는 한국어를 모르는 것이 문제 되지 않았다. 하지만 크면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다보니 한국인으로서 한국말을 모르는 것이 큰 치명타가 된 것이다. 이 형제는 아이들과 한국어를 배우면서 자신감을 되찾았다.

또한 한국 문화를 배우는 것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도전이 된다. 미국에서는 오케스트라, 밴드 활동이 고작인데 한국학교에 오면 고전 무용, 전통 악기를 배운다. 아이들이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또 다른 능력을 계발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재외동포재단을 통해 본국에서 소량이지만 도구 등 지원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