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작정 달리다 보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수많은 것들을 놓칩니다. 그런 삶은 목적지에 도달할지는 모르겠으나,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까지 아름다운 풍경은 물론 내가 어떤 길을 거쳐왔는지조차 생각나지 않습니다.
지난 두 주간, 사랑의 편지를 보내지 않은 이유입니다.
2. 멈추지 않고 써 왔던 사랑의 편지는 청년들에게 써왔던 소소한 편지에서 시작해, 알고 지내는 지인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되었습니다.
이 편지는 본래 주일 저녁의 일상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했고, 이제는 기사를 통해 조금 더 많은 분들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3. 그리고 사랑의 편지를 통해 지난 몇 주 동안 제 목회철학을 공유했던 시간이 끝났습니다. 마지막 다짐편을 작성하고 나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듯 했습니다.
“한승아, 말이 너무 많다.”
돌아보니 제 이야기만 한듯 했습니다. 목회는 들음인데, 너무 많은 말을 했다 싶습니다. 목회는 낮아짐인데, 너무 높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 년간 매 주일 보내는 편지를 ‘의도적’으로 멈춘 일은 없지만, 2주 동안 ‘의도적’으로 편지를 멈춘 이유입니다.
소소했던 일상의 나눔과 사랑의 꽃은,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아닌 제가 서 있는 곳에 피어 있음을 잊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4. 잠시 멈춰서야만 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만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디 서 있어야 하는지, 그 곳에 어떤 바람이 불고 있는지, 바람에 맞는 이들은 어떤 삶을 사는지…. 드디어 멈추고 나니, 고개가 다시 숙여집니다. 뻣뻣한 고개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 일상의 소소함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쪼록 한 분이라도 편지를 기다리셨던 분이 혹시 계시다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은 이렇게 멈춰서지 않으면 교만해지는 저의 못난 습성 때문입니다.
진심어린 사랑의 마음이 매일 샘솟듯 솟아나지 않아, 묵상할 시간이 필요한 사랑이 부족한 저의 탓입니다.
5. 앞으로도 매 주일 저녁마다 써왔던 사랑의 편지를 계속 쓸 생각입니다. 하지만 중간에 멈춰서는 일이 있다면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사랑의 마음 없이 쓰는 사랑의 편지는 가짜요, 멈춤 없이 달려감만 있는 사랑의 편지는 ‘욕망의 편지’가 되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6.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므로 다시 한 번 강조드립니다.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대단한 결단을 하는 것 하나 없습니다. 그저 거창한 목표만 있을뿐 매일 몸부림치는, 여러분과 전혀 다르지 않은 또 하나의 그리스도인일 뿐입니다.
그러니 제가 써 가는 사랑의 편지를 통해, 지난 시간이나 앞으로나 서툰 글 속에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욕망의 제 모습 말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만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한가지 권해 봅니다. 잠시 멈추어 서서, 여러분 곁을 둘러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고개 숙여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곳에 사랑이 필요합니다.
즐겁고 행복한 추석이 되셨기를 축원합니다. 샬롬.
유한승 목사(생명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