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한 복판에서 약 5천 명이 모여 예배 드리는 교회를 개척했고, 약 3만 명의 목회자들의 그의 설교를 듣는다. 지난 10여년 동안 54개 도시에서 380개 이상의 교회를 개척했으며,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의 설교에 귀를 기울인다. <뉴스위크>는 그에게 '21세기의 C. S. 루이스'라는 찬사를 보냈다. 누굴까?
바로 팀 켈러(Timothy Keller) 목사다. 그는 현재 미국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설교자 중 한 명이다. 그에 설교엔 대체 어떤 매력이 있는 걸까? 김지혁 교수(실천신대 설교학)는 최근 열린 새세대아카데미·한국설교학회 주관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목회 콘퍼런스'에서 '팀 켈러의 복음 설교'를 주제로 발표했다.
김 교수는 "켈러 목사는 교회 안에서 나타나는 병리적인 증상들과 개인의 삶에서 보이는 모든 죄악의 양상들은 궁극적으로 청중들이 복음의 깊은 의미들을 사실상 깨닫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진단한다"며 "그러므로 설교 가운데 복음이 올바로 선포된다면, 청중들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초래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켈러 목사는 복음의 본질을 알기 위해 우선 '복음으로 자주 착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실체를 규명한다. 즉, '율법주의'와 '반율법주의'가 그것이다. 전자는 익히 알려져 있듯, 우리의 행위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결정한다는 태도다. 김 교수는 "켈러 목사는 이를 '도덕주의적 행동주의'라 규정하면서, 그것이 일시적인 행동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온전한 새 사람이 되도록 하지는 못한다고 하면서 그 한계를 분명히 한다"고 했다.
흥미로운 것은 켈러 목사가 '반율법주의' 역시 율법주의와 그 본질에서 다르지 않다고 본다는 점이다. 그에 따르면 반율법주의는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형식적인 믿음을 넘어,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가 도덕적으로 살든 비도덕적으로 살든 하나님은 상관하지 않으신다는 잘못된 확신이다.
김 교수는 "율법주의와 반율법주의적 사고 방식의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뿌리는 동일하다"며 "켈러 목사는 이 둘을 '사실상 같은 배에서 나온 이란성 쌍둥이'로 규정한다"고 했다.
그는 "율법주의와 반율법주의 모두 동일한 처방을 요하는데, 그것이 바로 복음이다. 켈러 목사의 복음 설교는 청중들의 행위 아래 숨어 있는 마음의 동기들을 살필 수 있도록 섬세하게 돕는다"며 "은혜의 복음은 도덕주의적 접근 방식처럼 사람의 마음을 억지로 휘게 해서 어떤 정해진 틀에 강제로 넣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녹여서 완전히 새로운 모양이 되게 하여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준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런 율법주의나 반율법주의를 벗어난 '복음 설교'는 어떤 형태일까? 김 교수는 그와 같은 켈러 목사의 설교 방식을 이해하기 쉽게 예로 들었다. 일단 율법주의적 설교는 아래와 같다.
1. 이것이 성경 본문이 말하는 내용입니다.
2. 이 말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3. 가서 행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우실 것입니다.
반면, 복음 설교의 구조는 아래와 같다.
1. 본문의 의미 제시: 본문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2. 적용적 흐름: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없는데 그 이유는 바로 죄 아래의 죄 때문에 그렇습니다.
3. 그리스도께 인도: 아! 그것을 이미 이루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4. 결론적 적용: 이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도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김 교수는 "켈러 목사의 모든 설교를 이 공식으로 분석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정형화된 그의 복음 설교 방식이라 할 수 있다"며 "그것은 본문을 통해서 청중들 스스로 '죄 아래의 죄' 문제를 깨닫게 한 후에, 자신의 힘으로는 그 문제를 해 결할 수 없음을 인정하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게 하여, 궁극적으로 청중들의 삶의 모든 문제들의 궁극적인 해결책이 그리스도이심을 보이는 방식의 설교"라고 했다.
그러나 켈러 목사는 본문을 해석하고 주해하는 과정에서 해석학적 균형을 강조한다고 김 교수는 또한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켈러 목사는 설교 본문을 다루면서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빨리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바람에 그 본문의 특정 메시지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성경 본문 자체에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예수님이 소개되는 방식이 매주 거의 동일하게 들리게 된다. 반면 원래의 역사적 맥락 안으로 충분히 깊이 들어간다면, 성경에 존재하는 다양한 주제와 장르, 메시지 만큼이나 다양한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설교할 수 있다. 설교자는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본문을 설교하지 않은 채 급하게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하고, 반대로 그리스도를 설교하지 않은 채 본문만 설교하지도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