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무렵은 유럽에서 중세가 막을 내리고 근대사회, 혹은 초기근대유럽이 탄생한 시기로 여겨진다. 종교적으로는 극심한 부패가 가득했고, 사상적으로는 르네상스가 유럽사회 전역으로 전파되었다. 정치적으로는 봉건주의가 군주제로 대체되는 현상에 농민반란, 종교분쟁까지 겹쳐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경제적으로는 농업중심의 사회였던 유럽이 15세기 중엽부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상업자본주의 사회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런 혼란과 격변의 시기에 우리는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인물 중 대표적인 두 사람, 루터와 칼빈을 통해 종교개혁이 경제영역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고자 한다.
1. 루터의 경제사상
독일 작센지방의 한 도시 비텐베르크에서 태어나고 자란 루터는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사상을 주장한다. 그가 자란 환경이나 시기, 상황들을 고려할 때, 매우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첫째, 루터는 직업의 소명사상을 강조한다. 루터는 1520년에 그가 쓴 '선행론'에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들은(로마교회) 선행을 너무 좁게 정의함으로써 선행이란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 금식하는 것, 구제하는 것 만이라고 한다. 그들은 다른 것들을 가치없는 것으로 여기고 하나님이 그것들에 중요성을 전혀 두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신앙 안에 행해지고 말해지고 생각되어진 모든 것에 의해 섬김을 받는다"
더 나아가 직업을 성직으로 받아들여, 성직자나 일반 직장인이나, 왕이나 행정가나 기술자나 모두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르는 것이기에 차별이 없고,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둘째, 상업의 부정적 영향에 대해 비판했다. 루터는 상업이라는 직업역시 하나님의 선물로 인정했지만, 상인들이 필요이상의 이익을 추구하며 시장가격을 조정하는데에 있어서 부도덕한 일로 여겼다. 이는 다른 사람의 재산을 훔치는 행위며 그 중심에는 탐욕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한다.
셋째, 돈과 이자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취한다. 돈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 기대하지만 돈이 많은 곳은 오히려 물가가 올라가고, 삶의 환경이 오히려 나빠진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자에 대해서는 '가난한 자가 요구하면 그에게 쓸 것을 넉넉히 주라'는 신명기 15장 7,8절 말씀에 위배되는 것으로 보았다. 이자는 결국 다른 사람의 피를 빨아 먹고 파멸로 인도한다고 믿었다.
2. 칼빈의 경제사상
칼빈은 루터와 다르게 상업의 중심지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가 활동한 스위스 제네바는 상업과 은행의 줌심지였다. 또한 루터가 활동하던 시기에서 20년 정도가 지난 시간이기에 경제적 혼란이 훨씬 적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칼빈의 경제사상에 중요한 개념들을 살펴보자.
첫째, 노동은 성화의 과정이다. 칼빈 역시 노동이 소명이라는 관점은 루터와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더해 칼빈은 노동을 성화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바른 노동은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고, 고통이 아니라 기쁨을 가져다준다고 믿었다.
둘째, 어떤 직업이 좋은 일이냐는 입장에서 칼빈은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일'이라고 보았다. 선하고 좋다라는 가치관을 그는 사회적 관점에서 얼마나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한 영향을 주는가로 판단했다.
셋째, 칼빈은 공정한 임금에 대해 강조한다. 노동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기에, 임금 역시 하나님의 간접적인 보상, 은혜라고 보았다. 임금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녀를 돌보고 계시다는 증표로 보았다.
마지막으로, 칼빈은 이자에 대해 반대 입장을 펼쳤던 루터와는 달리 성경에 근거하여 이자의 정당성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가난한 자의 필요를 바탕으로 이자를 받는 것은 당연히 금지해야하지만, 생산적 활동에 대한 이자는 성경에서 금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칼빈은 발견한다. 물론 이자에 대한 부작용이 많다는 것을 칼빈도 잘 알았기 때문에 가난한 자에 대한 이자금지와 사업실패시 이자를 탕감해주는 것, 이자 제도의 상한선을 두는 노력들을 해왔다.
3. 두 종교개혁 지도자들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경제윤리
첫째, 경제행위는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하는 행위다. 직업을 소명으로 인식하고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우리가 들이는 예배가 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세가 된다. 종교개혁의 핵심 중에 하나가 삶과 예배를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일치시키는 것인데, 그 출발이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으로 가능하게 된다.
둘째, 물질과 영은 연결되어 있다. 입장은 조금씩 다르지만 물질교류와 영적교류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두 종교개혁자들은 말한다. 루터는 이 세상이 악한 영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경제인의 영적 강건을 주장했고, 칼빈은 올바른 경제활동은 성화의 길로 인도된다는 주장에서 두 영역은 서로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물질과 영의 일치, 삶과 신앙의 일치라는 개념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함을 말해준다. 루터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피해서 수도사처럼 살아가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유대인들이 다른 사람들과 섞여 살며 먹고, 마시고, 가정을 이루고, 땅을 일구고, 시민의 직무를 수행하고, 동료에게 선한 의지를 보여주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우리가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계속해야 했듯이 우리도 그렇게 해야한다고 말한다.
종교개혁 500주년인 지금,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사회의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한 교회를 갱신하고, 암울한 상황에 빠진 때에 귀중한 신앙의 유산을 기억하고 되살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유익한 일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이 기념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갱신되어 구체적 변혁을 일으키는 귀한 열매를 맺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