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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들과 관리들이 숯불을 피우고 그 주위에 둘러 서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의 뜰 안으로 들어간 베드로도 그들 곁에 서서 함께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숯불을 쬐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이미 한 차례 예수님을 부인한 상태였습니다. 이 숯불 (ἄνθραξ (안드라크) 또는 ἀνθρακιά (안드라키아))은 신약에는 세 번 밖에 등장하지 않는 단어입니다. 그 중 요한복음에 두 번 쓰였는데 둘 모두 베드로와 관련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요한복음 21장 9절에서 예수님이 제자들, 특히 베드로를 위해 생선을 굽기 위해 피워 놓은 불이 숯불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숯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는 로마교회의 교인들에게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롬12:20)" 라고 권면했습니다.

위 두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숯불은 죄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무언가잘못한 것을 생각나게 하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다시 어부로 돌아가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베드로에게 '숯불'은 단순히 몸을 녹이거나 요리를 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자신이 그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그 3년의 세월을 상기시키고 다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숯불을 머리위에 쌓아 놓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는 것이지요. 베드로는 그 숯불 앞에서 예수님을 두 번 부인합니다. 문 앞에서 부인 한 것까지 포함하면 모두 세 번을 부인한 셈이지요. 닭 울음 소리가 베드로의 귓전을 때립니다. 그리고 그는 밖으로 나가 흐느낍니다.

요한은 베드로가 울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베드로가 운 사실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숯불'로써그 당시 베드로의 모든 심정을 더 의미깊게 전달하려고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들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경험들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를 직접적으로 지적하지 않으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신 우리의 삶을 통해 간접적으로 깨닫게 해 주십니다. 뭔가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실수를 생각나게 하시고 또 그것을 통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는 계기로 만들기도 하시지요. 그 때 우리는 그 십자가의 용서와 우리를 향한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의 삶에서 '숯불'은 무엇이었는지 한 번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인생에 있어 숯불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지 않은가요?

 

[출처:http://www.b2b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