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용서해야 하는가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 포이에마 | 272쪽 | 11,000원
"등에 박힌 총알보다, 가슴속에서 자라는 복수심이 더 끔찍하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용서'를 강조한다. 주기도문에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 6:12)'라는 말도 나오고,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도 용서하라(마 18:22)'는 주님의 말씀도 있다. 우리의 구원과 믿음도 주님의 십자가로 인한 '용서'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IS의 프랑스 파리 테러 소식을 접하면서, 이 작은 책을 집어들 수밖에 없었다. 전혀 용서하고 싶지 않았으며, '왜 용서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층간소음처럼 직접 겪어내야 하는 사소한 문제부터 이러한 전 지구적 테러까지, '용서'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면서도 희생과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책에는 끔찍한 사고로 자녀를 잃거나 축구선수의 꿈을 좇다 무고한 폭행을 당해 하루아침에 하반신이 마비된 사람 등,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증오' 대신 '용서'를 선택함으로써 삶을 회복하고 진정한 승리를 얻는 이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일제강점기와 6·25 등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서로에게 수많은 상처를 안긴 우리나라의 사례도 여럿 나온다.
저자는 "용서는 평화와 행복으로 가는 문"이라며 "낮고 좁아서 몸을 구부리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한다. 그 문은 찾기도 어려워서 찾는 데 오래 걸리지만, 그렇다고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저자는 "이 책에 소개된 사람들은 모두 용서의 문을 찾아냈고, 그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당신도 어느새 그 문 앞에 당도할지 모른다"며 "그때는 부디 그 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이 당신 뿐임을 기억하라"고 한다.
물론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도 책을 읽었지만 나와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끔찍한 고통을 가한 이들을 용서할 수 있을지 감히 자신할 수 없다. 저자도 "용서해도 고통이 사라지지 않을 수 있고, 심지어 상대방이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고마워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언급한다.
저자의 말처럼, 용서를 이론화하고 칭찬하거나 타인에게만 요구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영화 <밀양>에서 등장하는 극명한 사례에서 보듯, 자신만을 위한 섣부른 용서는 또 다른 증오를 낳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용서는 우리를 원한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지 않게 해 주고, 마음속 상처나 분노를 누군가에게 퍼붓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게 해 준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용서는 '의지'를 가지고 미워하는 일을 그만두기로 결심해야 가능하고, 증오는 결국 나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분노의 연료는 늘 쓸모없이 허비되고 말지만, 이와 반대로 용서하는 사랑의 마음은 낭비되는 법이 없다."
'실용주의적 관점'에서도 용서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마틴 루터 킹은 자신을 비롯해 흑인 민권운동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앞으로 수십 년간 반대자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상대편의 거친 태도에 적개심을 품으면 이는 폭력으로 이어지고, 억압과 적개심의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는 것이다.
결국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파멸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유일한 길은 '박해자를 용서하는 것' 뿐이다. 이 책의 많은 예에서도 보듯, 슬픔에 눈이 멀어 가해자도 자신과 똑같은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생각에 복수로 위안을 얻으려 하지만, "복수는 손톱만큼의 위로도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복수로는 치유를 경험할 수 없고, 오히려 깊은 번민과 환멸에 빠질 뿐이다.
예수님께서도 이를 아셨기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율법을 '원수까지도 (용서를 넘어) 사랑하라'는 복음으로 치환시키셨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종교'를 앞세워 '성전(聖戰)'이라는 이름으로 폭력과 살상을 서슴지 않으며 도전해 오는 이들에게, 우리는 계속되는 희생을 감수한 '용서'라는 카드를 내밀어 궁극적으로 이 땅에 '평화'라는 결과물을 얻어낼 '용기'가 있을까.
여러 외신 보도를 보면, 다행히 파리시민들은 '증오'를 선택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프랑스 지역에서 반이슬람 증오 범죄가 평소의 6-8배 늘어났고 프랑스 정부를 비롯한 전 세계는 'IS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파리 시민을 증오에 빠지게 할 수 없다', '테러가 우리 삶을 바꿀 수 없다', '삶은 계속된다'는 등의 목소리도 있다.
특히 테러로 저널리스트 아내를 잃은 남편 앙투안 레리는 "IS 당신들은 결코 내 증오를 가져가지 못할 것"이라며 "당신들은 내 분노와 미움을 간절히 얻고 싶겠지만, 증오로 답하는 건 당신들을 그런 인간으로 만든 무지함과 다를 것이 없다"는 편지를 남겼다. 또 "난 더 이상 당신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지금 막 낮잠에서 깬 17개월 된 아들에게 돌아가야 한다"며 "이 작은 아이는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아감으로써 당신들을 괴롭힐 것"이라고 했다. 이 글은 SNS를 통해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저자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는 1999년 전신마비 사고를 당한 경찰관 출신과 함께 '폭력의 고리 끊기'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에게 '용서를 통한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는 브루더호프 공동체에서 사역하고 있으며,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비폭력 흑인 민권운동을 옆에서 지켜보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본지와 인터뷰했던 <나이 드는 내가 좋다>를 비롯해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입니다>, <부모가 학교다>, <평화주의자 예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