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비범한 삶은 자신을 비우고 순종할 때 가능
진정한 행복은 가진 것 나누고 베푸는 이웃사랑 실천에서
만희복지재단은 생명 살리는 내 인생의 예수사랑 실천무대
노인센터는 이민 1세와 다음 세대 간의 소통의 장이 되길 바래

박형만 장로는 서독 광부 출신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시킨 보기드문 인물 중 한 사람이다. 2014년도에 출간된 그의 자서전 <향기로운 나의 인생(부제: 서독광부의 아메리칸 성공기)>를 보면 그가 얼마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비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박형만 장로는 1937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매우 가난한 가정형편에서 성장했지만 결코 기죽는 법이 없었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반듯한 성품은 운동에서도 공부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불의를 참지못하는 의협심도 강해 백제의 계백장군의 피를 물려받았음이 분명하다고 친구들은 말하기도 했다. 그 뿐만 아니라 친화력이 좋았던 박 장로 주변에는 항상 친구들이 많이 따라붙었다. 그의 타고난 성품을 잘 알 수 있는 대목들이다.

박형만 장로가 서독 광부의 아메리칸 성공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향기로운 나의 인생>에 친필 사인을 하고 있다.
박형만 장로가 서독 광부의 아메리칸 성공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향기로운 나의 인생>에 친필 사인을 하고 있다.

그런 그가 가족의 가난을 청산하고자 다니던 건국대학교(정치외교학과 2년 수료)를 중도 하차하고 과감하게 서독 광부행을 결정했다. 그리고 1964년 제2진에 선발되어 서독 루르 엔센광산으로 떠났다. 그의 자서전에서 그는 그날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던 어머니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아니, 가슴이 미어진다고 한다. 박 장로의 나이 올해로 벌써 78세인데도 말이다. 그는 그 마음이 바로 '어머니'라는 이름이라고 입술을 깨물며 말한다. 어쩌면 오늘날 그가 만희재단을 설립하여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것도 다분히 그 '어머니'의 마음을 유산으로 받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만희재단 명은 박형만 장로의 '만'과 그의 부인 이숙희 권사의 '희'를 따서 만든 재단 이름이다.

그의 서독 광부행은 지긋지긋한 개인의 가난 청산이기도 했지만 국가의 가난 청산을 위함이기도 했다. 그 당시 고 박정희 대통령과 고 육영수 여사의 방문으로 말할 필요도 없이 서로 부둥켜 않고 울었던 눈물은 바로 '사랑'의 눈물, '애국'의 눈물이었다고 박 장로는 말한다.

그 가난을 청산하기 위해 박 장로는 사선을 넘나드는 1킬로미터 이상의 깊은 갱도로 매일같이 출근했다. 심지어는 하루에 2가지 직업을 뛰면서까지 근검절약하며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어린시절부터 어머니로부터 철저하게 교육받아온 정직함과 근검절약이 몸에 뱄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그 당시 서독 간호원으로 와 있었던 현재의 이숙희 권사와 결혼을 약속하고 1967년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이곳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리고 그는 그 꿈을 이뤘다. 현재, 박 장로는 남부럽지 않은 부를 축적했다. 이 지역 제일가는 부자 중의 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부가 그냥 이뤄진 것은 결코 아니다. 기본에 충실하고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알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소유 아파트가 수십채인 지금도 그는 매니저에서 플러머까지 일인 다역으로 항상 바쁘다. 그것이 그의 '아메리칸 드림' 성공의 비결이다.

박형만 장로(맨 왼쪽)는 주일 대예배에서 찬양으로도 하나님께 영광 드리고 있다.
박형만 장로(맨 왼쪽)는 주일 대예배에서 찬양으로도 하나님께 영광 드리고 있다.

4.29폭동을 몸소 경험하고, 사랑하는 첫 아들을 교통사고로 3살에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아들 못지 않은 딸 넷으로 그 빈 자리를 메워가며 달려온 인생, 이제 그가 관심두는 것은 하나님 사랑 실천밖에 없다. 불신자인 박 장로를 끝까지 인내하며 인도해 준 부인 이 권사의 신실한 모태신앙의 기도응답인지도 모른다. 현재까지 박 장로는 두 개의 교회당을 건립하여 양도했고, 현재 섬기고 있는 은혜성로원교회도 박 장로가 마련하여 하나님께 헌납한 곳이다.

그리스도의 '이웃사랑' 실천은 만희재단을 통해 고향 공주의 어려운 지체들과 장애우들을 섬겨가고 있다. 해마다 10월이 되면 그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비행기에 오른다. 그들에게 줄 사랑으로 그들에게서 받아오는 사랑이 더 많은 기쁨이 그리워지기 때문이다.

현재 이사장으로 섬기고 있는 노인센터도 박 장로가 이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해를 거듭할수록 활기를 더해 가고 있다. 이민사회도 피해갈 수 없는 실버세대가 점차 늘고 있어서 노인센터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박 장로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노래교실, 컴퓨터교실, 사물놀이교실 등 23개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진행되고 있다. 실버세대 위로의 장을 넘어 이민 1세와 2-3세 간의 가교역할로서의 노인센터는 박 장로의 또다른 '아메리칸 드림', 그리스도인의 비범한 삶, 이웃사랑 실천의 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