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리히 본회퍼
매튜 D. 커크패트릭 | 비아 | 112쪽 | 6,000원
지난 4월 9일은 디트리히 본회퍼가 나치의 패망을 한 달여 앞두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지 70년이 되는 날이었다. 서거 70주년을 앞두고 지난해부터 본회퍼 관련 도서들이 계속해서 출간되는 가운데, 최근 나온 <디트리히 본회퍼: 평화주의자와 암살자 사이에서>는 본회퍼에 관한 간략한 입문서이다.
英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철학적 신학과 윤리학을 가르치는 저자는 '평화주의자'와 '암살자'라는, 본회퍼의 신학과 행위 사이에서 일어나는 긴장을 설명하고, 그의 삶과 윤리학을 개관하고 있다. 저자는 본회퍼에 대한 '평화주의자 혹은 폭력의 보증인'이라는 극단적 시각을 배제한 채, 그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한 도전적이고 논쟁적이며 비판적인 깨달음을 몸소 구현하려 했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루터 신학과 독일 민족주의, 다양한 국가로의 여행 등 그를 둘러싼 이념적 분위기를 먼저 살피고, 그가 히틀러 암살모의에 가담한 첫 이유로 '교회의 활동'을 말한다. 본회퍼는 교회가 국가의 반대편에 서야 하고 그 저항이 반드시 비폭력적이어야 한다고 했지만, 핑겐발데신학원에서마저 실패한 후 그에게 더 이상 저항을 도모할 공동체가 남아 있지 않았다는 것. "던질 수 있는 건 자신의 몸 뿐이었다."
둘째 이유는 그의 '윤리학' 자체에 있다. 윤리 체계란 옳음과 그름에 관한 결정에 근거해 작동하지만, 본회퍼는 이러한 윤리 체계가 나치 시대에서는 더 이상 작동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나치가 독일의 구원자를 자처하며 극악무도한 범죄 행위를 '정의 구현을 위한 심판'으로 포장하는 '윤리 연막작전'을 벌였기 때문이다.
본회퍼는 그때 오히려 윤리학 전체의 진실, 평상시 알 수 없던 윤리적 체계의 궁극적 결함을 발견해냈다. 그에게 처한 극단적 상황은 유별난 예외 상황이 아니라 오히려 일종의 시험 상황이었던 셈이다. 윤리적 원칙들이 실패하고 더는 궁극적인 것에 봉사하지 못하는 순간과 장소가 생긴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직접 다가가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 하나님은 '이삭 번제(아케다)'에서 보듯 예상할 수 없고, 심지어 비윤리적 명령을 내릴 수도 있으며, 그 명령이 질서 혹은 윤리적 원칙과 상호모순일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는 윤리적 원칙을 긍정한다. 그 궁극적 목적은 지상의 평화로운 삶이 아니라, 사람들이 영원에 도달하도록 이끌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암살 모의에 가담한 본회퍼의 윤리학이 종교적 극단주의와 자살테러의 변(辯)으로 오용될 수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해 "본회퍼는 암살 모의에 가담했고 그 일에 전념했지만, 동시에 그는 엄청난 불안감에 휩싸였고 마지막까지 그 불안을 떨쳐내지 못했다"며 "그런 그를 붙들어 준 것은 자신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은총과 용서하시는 그분의 자비에 관한 깊은 이해였다"고 전했다.
저자는 결론에서 "본회퍼의 윤리학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 도전적으로 받아들인다면 두려움과 떨림 만큼이나 흥분과 확신을 갖게 될 것"이라며 "본회퍼에게는 이것이야말로 제자됨의 진정한 본성이었다. 그리스도교는 윤리적으로든 교리적으로든 체계라는 안전한 틀에 갇히지 않는다"고 말한다.
100여쪽의 짧은 내용의 이 책에는 같은 출판사에서 앞서 나온 비슷한 형식의 입문서 <토마스 머튼>처럼 '디트리히 본회퍼 읽기'에 대한 설명과 함께 그의 저서들과 함께 읽어볼 만한 책들을 간단히 소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