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섹스
폴 트립 | 아바서원 | 304쪽 | 13,000원
어린 시절, 책꽂이에서 리차드 포스터의 <돈 섹스 권력>이라는 책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지금도 읽히는 유명하고 유익한 책이지만, 나도 모르게 '저 책은 펴 보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돈과 섹스>의 저자 폴 트립은 그리스도인들의 이 같은 '이원론적 사고'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돈 섹스 권력> 이후 30여년이 지났지만, 성(性)과 돈에 대한 세상의 욕망은 훨씬 적나라해졌다.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할 그리스도인들은 이 둘에 대해 시류를 좇아가기 바쁘거나, 신앙에 방해가 되는 것들로 치부하고 있다.
<목회, 위험한 소명>, <치유와 회복의 동반자> 등을 쓴, 상담학 교수인 저자는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성과 돈'의 주인이심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이 둘은 그 자체로서 악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 "성과 돈은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물이요 그 분의 전적인 주관 아래 존재하므로, 우리는 당황하거나 겁내지 말고 존중과 경외로 그것들에 접근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시고, 사랑으로 인하여 천지만물과 사람을 창조하셨으며, 그 속에 성(性)의 쾌락을 두셨다. 하지만 지금은 성이 사랑을 대체해 버렸고, 사랑은 성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돈으로 사랑을 사거나,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부(富)의 뿌리로 칭송받는다.
저자는 우리 인생을 성(聖)과 속(俗)으로 나눠 행동하려는 이분법적 사고가 '위험'해졌다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인간의 삶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이 영역들을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관점에서 보지 못하게 되었다. 즉, 성경이 말하는 현실적인 지혜를 소중히 여기지 못하고 엉뚱한 데서 도움을 찾게 된 것이다."
나아가 저자는 하나님은 영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형상대로 그분과 관계를 맺도록 지어졌기에, 삶의 모든 것은 영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성과 돈도 '영적'이며, 그 세계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속의 세계에서 이 둘을 회복시키는 것은, 우리와 하나님을 화해시켰던 바로 그 십자가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쾌락을 즐기면서, 구속의 영원한 즐거움도 함께 찬양해야 한다.
저자는 이처럼 성과 돈에 대한 시시콜콜한 행동 지침이나 금욕주의 실천 방법을 전파하는 대신, 우리의 행동을 지시하고 조성하는 마음과 영혼에 대한 성경적 관점을 통해 '근본적' 처방전을 제시하고 있다. "이 모든 난관 중에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여전히 다스리시며 최후의 원수가 굴복하기까지 그 나라는 끊임없이 전진할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그리고 성과 돈의 문제는 단순히 주변 문화의 유혹에 맞서 싸우거나 행동을 개선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다. 우리를 유혹하는 악한 세상 탓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가장 큰 문제가 있음을 고백하는 데서 변화는 시작된다.
(모든 요소가 그렇겠지만) 성(性)에 대해 "성적 순결을 지키려는 싸움에서는 성이 문제가 아니라, 쉽게 방황하는 우리 마음이 문제"라며 "엉뚱한 데서 마음의 만족을 찾으려는 모든 죄인의 성향이 문제"라고 핵심을 지적해 준다. 성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우리의 문제이다.
성은 하나님을 보좌에서 끌어내고 각자의 세상을 장악하며, 우리의 이기적인 목적과 쾌락을 위해 자신만의 법칙을 쓰려는 끊임없는 유혹이 드러나는 장이다. 저자는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주요 방법 중 하나일 수 있는 성생활도, 자기 사랑이 유일한 동기일 때는 위험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성과 돈은 한국교회(특히 대형교회)가 사회에서 지탄받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원인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 '스캔들'의 주인공들을 정죄하고 비난하기보다, "이 책을 쓰면서 드러난 내 참모습-여전히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정욕과 중요하지도 않은 물건에 돈을 허비하고 있는-에 큰 충격을 받았고, 마음이 슬프고 아프다"고 고백하는 저자처럼 자신을 비추는 거울로 삼아보는 게 어떨까.
"이 책을 읽으면서 때로는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기쁨의 탄성을 내지르길 기대한다. 얼굴을 찡그리며 즐거워하거나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라. 그것이 메시아가 성과 돈 문제를 온전히 해결해 주시리라는 확신 가운데,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기다리며 살아가는 우리에겐 당연한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