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TV프로그램 가운데 ‘몰래카메라’를 가지고 상대편을 곤경에 빠뜨리는 오락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주인공 몰래 미리 각본을 짜놓고 다가가서 가능한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리는 모습을 보고 즐기는 프로그램입니다. 곁에서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유쾌할지 모르지만 몰래카메라에 당하는 당사자는 아주 당혹스럽습니다.

어제 신문을 보니 한국에서 입담 좋기로 소문난 김제동씨를 상대로 그런 게임을 벌린 기사가 실렸습니다. 김제동 씨가 강의 부탁을 받고 어느 대학 교실에 가서 강의를 하는 도중 각본에 따라 난동을 부리는 학생들이 등장하고, 급기야 교실 안에서 싸움이 벌어집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김제동 씨의 강의 도중에 자기들의 입장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강의 시간은 학생들과의 시간으로 내가 마이크를 잡았을 때는 대통령이 와도 내 시간을 내주지 않습니다.” 그러자 학생들이 무릎을 꿇고 애원하자 자기도 그들 앞에 같이 무릎을 꿇고 이런 말로 학생들을 설득시킵니다. “어떠한 정당한 목적도 부당한 수단으로 정당화돼서는 안됩니다.”자기가 세운 기준에 정당하다고 인정되면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보든 상관없이 자기 눈에만 정당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 시대에 일침을 가하는 아름다운 말이라 몇번이고 되새겨 보았습니다.

신약성경에 고린도 교회가 나옵니다. 그 교회는 요즘 말로 표현하면 문제 투성이 교회입니다. 교회 안에 파벌이 있고, 소모적인 신학적 논쟁이 끊이지 않고, 심지어 이단 시비까지 일어나는 아주 복잡한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를 향해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모든 것이 허용되었다고 여러분들은 말하지만, 모든 것이 다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또 모든 것이 허용되었다고들 그러지만 모든 것이 다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닙니다.”(고전 10:23).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어려움에 처하게 된 것은 서로가 너무 열심을 내었기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너도나도 교회를 위해 열심히 봉사하다보니 서로 부딪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성도들과 교회에게 유익이 되고 덕이 되는지를 먼저 살피고 그 일을 하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특별히 앞장 선 리더의 세심하지 못한 결정이 교회 공동체 안에 있는 다른 지체에게 깊은 상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바울은 자기 좋은데로 하지 말고 교회의 덕을 세우는 말을 하고, 성도들 앞에 덕을 세우는 행동을 하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바울은 말로만 권면하지 않고 연약한 성도들이 자기가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는 것을 보고 시험에 들 수 있다면 평생 고기를 입에 대지 않겠다고 스스로 모범을 보였습니다. 이 시대 교회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아픔이 있다면 교회 안에서 바울과 같은 결단을 내리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나만 좋으면 되고, 내 생각에만 맞으면 되고, 내게 유익이 되면 동참하고, 내 기준에만 맞으면 주져없이 행동으로 옮겨버립니다. 교회 안에서 나의 자유함이 지나쳐 함께 교회를 세워가는 지체들에게 아픔이 되고 있는지를 살피는 넉넉함이 사라졌습니다. 내가 확신을 가지고 행하는 일 때문에 뒤에서 눈물을 흘리는 지체의 고통은 무시하고 지나가버립니다. 무심코 던진 세상적인 농담 한 마디에 한 지체가 숨을 죽이고 죽음의 고통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망각합니다.

이런 모습이 연약한 성도들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아픔이 되는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나는 정당한 근거로 말하고 행동했으니 내가 문제가 아니라 상처를 받는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곳은 더 이상 주님의 몸된 교회 공동체이기 보다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과 다를바가 없어집니다.

하고 싶은 말도 가려서 하고. 하고 싶은 행동도 가려서 하는 절제의 미덕이 요구되는 곳이 바로 주님이 세우신 교회입니다. 더구나 이민교회는 누구 하나 건드리기만 하면 터질 것 같은 시한폭탄과도 같은 상처투성이의 성도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렇다고 교회가 서로 눈치보는 곳이 되어서는 더욱 안됩니다.

나보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 나보다 약한 자의 심정을 헤아리는 마음, 나 자신 보다는 교회 전체의 유익을 구하는 마음, 나아가서는 눈에 보이는 사람의 유익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유익을 구하는 예수님의 마음이 필요한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