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leafy winds are blowing cold,
이제 나뭇잎을 몰아가는 바람이 쌀쌀하게 부네요
And South, by West the sun goes down,
남쪽으로 서쪽으로 태양은 지고
A quiet huddles up the fold
양떼들은 조용히 옹기종기 모여드네요
In sheltered corners of the brown.
갈색 나뭇잎의 피신처 구석진 곳으로
Like scattered fire the wild fruit strews
흩어진 불꽃처럼 야생 과일이 널려있네요
The ground beneath the blowing tree,
바람 타는 나무 밑 땅에
And there the busy squirrel hews
그리고 거기 바쁜 다람쥐는 깎아 길을 낸다오
His deep and secret granary
그의 깊고 비밀한 곡식 창고에

And the night comes starry clear
그리고 별처럼 맑은 밤이 온다네
The lonely quail complains beside.
외로운 메추라기는 곁에서 한탄한다네
The glistening water on the mere
호수의 반짝이는 물
Where widowed Beauties yet abide.
거기 홀로된 미인 요정들이 아직도 산다네

And I, too, make my own complaint
그런데 나 역시 스스로 탄식한다네
Upon a reed I plucked in June,
6월에 내가 뽑아 만든 갈대 피리를 불어
And love to hear it echoed faint
그리고 희미하게 퍼져가는 것을 듣기 좋아한다네
Upon another heart in tone.
또 다른 가슴 위에 곡조가 되어

아메리칸침례신학대학 배효식 교수
아메리칸침례신학대학 배효식 교수

이 시를 쓴 시인 프랜시스 에드워드 레드위지(Francis Edward Ledwidge)는 아일랜드의 제인빌 스레인(Janeville, Slane, Ireland) 출신으로 '농민 시인' 혹은 '전쟁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검은 새에서 따온 '흑조 시인(The poet of the blackbirds)'이라는 별명도 유명하다. 이에 더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젊은 나이로 싸움터에서 전사한 '영웅 시인'라고도 불리운다.

9남매 중 8번째로 태어난 시인 레드위지는 그의 나이 5살 되던 해, 아버지를 여의고 13살에 학교를 그만 두고 돈을 벌어야만 했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농터에서, 구리쇠를 파는 광산에서, 거리를 보수하는 일에서부터 상점 내 허드렛 일에 이르기까지 온갖 일을 이리저리 찾아다니며 돈을 벌어야만 했다.

이런 환경 탓에 시인은 어릴 때부터 가난의 쓰라림과 고통을 겪으며 살아왔다. 가난 때문에 정규 학교교육은 제대로 받지 못했으나 독학으로 실력을 길러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의 어머니 앤 린취(Anne Lynch) 여사는 아들에게 충분한 교육을 받게 하지 못한 것이 한이었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레드위지의 시는 그의 나이 14살 되던 해에 이미 지역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그러다 운 좋게 던새니 경(Lord Dunsany)이란 시인을 알게 됐는데, 그는 당시 더블린(Dublin)과 런던(London)에서 문인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던새니 경은 레드위지의 시집을 출판하는 데에도 문학적, 재정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을 뿐 아니라 유명한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도움으로 레드위지는 <들의 노래(Songs of Fields)>라는 시 모음을 출판하게 됐다. 그는 또 민족주의자였고 애국자이기도 했다. 영국의 음악가 마이클 헤드(Michel Head)가 그의 시 를 작곡해 널리 불려지고 있다.

<시 감상>

사람들은 흔히 가을을 좋아한다. 아마도 한여름 내내 찜통 더위에 시달렸을지언정 살살 불어오는 바람 아니, 쌀쌀하게 부는 바람이 더위를 몰아쳐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레드위지가 노래한 이 가을에 대한 시는 영국 시인 존 키츠(John Keats)가 쓴 <가을에게(Ode to Autumn)>라는 시와 비교된다고 평론가들은 말한다.

뛰어난 언어적 표현으로 가을 나뭇잎이 떨어지는 모습을 서글프게 묘사한 부분은 물론 들판 풍경과 그곳동물들의 모습을 시인 특유의 감각으로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따스한 털옷을 입고 있는 양떼들이 추워서 옹기종기 낙엽이 모여드는 구석으로 떼지어드는 모습을 그린 구절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또 다람쥐의 생태를 노래한 부분에선 동물이나 사람이나 먹을 것을 준비하려는 요구는 같은 것이란 느낌을 받게 된다.

이 시를 읊조리고 있노라면 가을 밤이 더욱 쓸쓸하게 느껴진다. 알고 보면 짝 잃은 메추라기 새처럼 사람이나 짐승이나 외로운 것은 매한가지이리라. 호수에서 사는 요정조차 짝을 잃으면 헛헛하고 쓸쓸한 마음에 탄식할런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시인 역시 헛헛함을 달래고자 피리를 불며 자신의 외로움을 새의 가슴에 옮기려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도 이러한 심경을 노래한 곡이 있다. <아! 가을인가(김수경 시 나운영 곡)>에 나오는 "아 가을인가 아 가을인가, 아아아 가을인가봐, 물통에 떨어진 버들잎 보고, 물 긷는 아가씨 고개 숙이지"라는 구절이 바로 그것. 고개를 숙이는 것은 '또 한해가 가니 쓸쓸하구나' 혹은 '난 올해도 시집을 못 가는구나" 등 여러 모양으로 탄식하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면 가을은 탄식의 계절인가 보다. 레드위지가 한탄의 계절로 가을을 그린 연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아메리칸침례대학 배효식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