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한인청년회의소(KAJC) 제 18대 회장에 선출된 송민석(30. Paul Song)씨. 얼마 전까지 163 스트릿 노던블러바드에 위치한 체이스 은행 지점장을 하다 승진, 현재 체이스 은행 내의 중간규모의 사업체 고객들을 관리하는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또한 그는 아버지께서 담임하고 있는 목양장로교회(송병기 목사)의 방송실을 섬기고 있는 젊은 집사이며, 3년 전 친구의 결혼식에서 만난 아내, 두살배기 아들 송 갈렙 군과 함께 꾸미는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하다.
그는 5살때 부모를 따라 미국에 와 이민 1.5세로서 살면서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한 결과 스타이브슨트 고교를 졸업하고 카네기 멜론 대학에서 비즈니스 분석학 및 재정학를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체이스뱅크에 입사, 3년 만에 플러싱 163스트릿 지점장에 올라 주변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항상 부모님께 최선을 다 하고 남을 돕는 삶을 살도록 배웠습니다. 은행에 가서도 제 일처럼 모든 부분에서 최선을 다 하려고 노력 했지요. 저는 이민 목회 초기, 뉴욕에 이민자도 그리 많지 않던 시절 부모님의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고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공장에 다니시면서 저희 가족의 뒷바라지를 하셨죠. 남을 위해 희생하시고 최선을 다해 사시는 모습을 자연스레 배운 것 같습니다."
송씨는 체이스뱅크에 입사해 남보다 1시간 먼저 출근하고 두 시간 늦게 퇴근하는 생활을 하면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상관과 선배들의 업무 능력을 배우려고 많이 노력하기도 했다.
현재 회장으로 있는 뉴욕한인청년회의소에 합류하게 된 것은 2005년 부터. 18세 부터 40세 까지 회원이 될 수 있는 이 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리더십 함양, 전문가들 끼리의 네트워킹, 자신이 가진 전문적 지식과 소유를 커뮤니티에 나누는 것이다. 평소 관심이 있었던 전문가들과의 네트워킹과 청년회의소의 리더십 개발 계획에 참여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 곳의 리더십 개발에 관한 분야를 통해 제 자신이 크게 쓰임받을 수 있는 그릇으로 성장할 수 있고, 커뮤니티에 봉사할 수 있어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열릴 청년회의소 이벤트는 오는 6월 중 열릴 UN 미팅. 전 세계의 대표급 청년회의소 멤버들 500여명이 참여하는 큰 행사가 될 예정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 손 잡고 따라다니면서 막연히 '목회는 좋은 것인가 보다. 나도 나중에 크면 아버지처럼 목사가 되어야지'라고 생각했을 때도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저를 금융계에서 일 하도록 인도하셨네요. 아직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저를 쓰실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쓰시려고 할 때를 위해 제 자신을 개발하고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싶습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미국국적의 시민이지만 자신의 뿌리는 한국이기에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는 송씨. 이러한 생각은 송목사 부부의 교육과 무관하지 않다. 인터뷰 내내 막힘없이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자랑해 이유를 물었더니 아버지 송병기 목사가 '돈 주세요'같은 간단한 문장도 한국어로 말하지 않으면 들은 척도 안 했다고 한다. 피츠버그에 소재한 카네기 멜론 대학에 갔을 때는 뉴욕에 있는 어머니께 한글로 장문의 편지를 보내 어머니를 감동시키곤 했다. 아버지 송목사의 목회 철학 중 하나는 한인 교회는 한국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송목사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뿐만 아니라 교회적으로도 한글교육을 늘 강조해 왔다고 한다.
뉴욕한인청년회의소의 회장, 금융계의 전문인, 단란한 가정의 가장, 미국에 사는 한국인, 그리고 크리스천으로서 한 발자국 씩 밟아 나가는 그의 삶은 앞으로 어떠할까.
"어렸을 때 발자국을 보면서 막연히 '큰 발자국을 남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해 왔지요.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싶고, 제가 이미 받은 많은 것들을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또한 그는 아버지께서 담임하고 있는 목양장로교회(송병기 목사)의 방송실을 섬기고 있는 젊은 집사이며, 3년 전 친구의 결혼식에서 만난 아내, 두살배기 아들 송 갈렙 군과 함께 꾸미는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하다.
그는 5살때 부모를 따라 미국에 와 이민 1.5세로서 살면서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한 결과 스타이브슨트 고교를 졸업하고 카네기 멜론 대학에서 비즈니스 분석학 및 재정학를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체이스뱅크에 입사, 3년 만에 플러싱 163스트릿 지점장에 올라 주변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항상 부모님께 최선을 다 하고 남을 돕는 삶을 살도록 배웠습니다. 은행에 가서도 제 일처럼 모든 부분에서 최선을 다 하려고 노력 했지요. 저는 이민 목회 초기, 뉴욕에 이민자도 그리 많지 않던 시절 부모님의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고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공장에 다니시면서 저희 가족의 뒷바라지를 하셨죠. 남을 위해 희생하시고 최선을 다해 사시는 모습을 자연스레 배운 것 같습니다."
송씨는 체이스뱅크에 입사해 남보다 1시간 먼저 출근하고 두 시간 늦게 퇴근하는 생활을 하면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상관과 선배들의 업무 능력을 배우려고 많이 노력하기도 했다.
현재 회장으로 있는 뉴욕한인청년회의소에 합류하게 된 것은 2005년 부터. 18세 부터 40세 까지 회원이 될 수 있는 이 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리더십 함양, 전문가들 끼리의 네트워킹, 자신이 가진 전문적 지식과 소유를 커뮤니티에 나누는 것이다. 평소 관심이 있었던 전문가들과의 네트워킹과 청년회의소의 리더십 개발 계획에 참여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 곳의 리더십 개발에 관한 분야를 통해 제 자신이 크게 쓰임받을 수 있는 그릇으로 성장할 수 있고, 커뮤니티에 봉사할 수 있어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열릴 청년회의소 이벤트는 오는 6월 중 열릴 UN 미팅. 전 세계의 대표급 청년회의소 멤버들 500여명이 참여하는 큰 행사가 될 예정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 손 잡고 따라다니면서 막연히 '목회는 좋은 것인가 보다. 나도 나중에 크면 아버지처럼 목사가 되어야지'라고 생각했을 때도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저를 금융계에서 일 하도록 인도하셨네요. 아직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저를 쓰실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쓰시려고 할 때를 위해 제 자신을 개발하고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싶습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미국국적의 시민이지만 자신의 뿌리는 한국이기에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는 송씨. 이러한 생각은 송목사 부부의 교육과 무관하지 않다. 인터뷰 내내 막힘없이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자랑해 이유를 물었더니 아버지 송병기 목사가 '돈 주세요'같은 간단한 문장도 한국어로 말하지 않으면 들은 척도 안 했다고 한다. 피츠버그에 소재한 카네기 멜론 대학에 갔을 때는 뉴욕에 있는 어머니께 한글로 장문의 편지를 보내 어머니를 감동시키곤 했다. 아버지 송목사의 목회 철학 중 하나는 한인 교회는 한국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송목사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뿐만 아니라 교회적으로도 한글교육을 늘 강조해 왔다고 한다.
뉴욕한인청년회의소의 회장, 금융계의 전문인, 단란한 가정의 가장, 미국에 사는 한국인, 그리고 크리스천으로서 한 발자국 씩 밟아 나가는 그의 삶은 앞으로 어떠할까.
"어렸을 때 발자국을 보면서 막연히 '큰 발자국을 남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해 왔지요.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싶고, 제가 이미 받은 많은 것들을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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