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399년전 어느 날 소크리테스는 법정에 나오라는 법정출두 명령서를 받는다. 누군가 자신을 고발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수 많은 생각을 하면서 아고라에 있는 시민 법정으로 향했다. 크라톤이 아침 일찍부터 찾아와 제발 법정에서 고분고분하라고 잔소리를 퍼붙는다. 플라톤은 늘 무언가를 쓰면서 그의 뒤를 따른다. 오늘만큼은 참아야 한다. 마지막 변론이기 때문이다. 이미 501명의 배심원들은 아고라 광장에 북적대고 있었다. 손에는 집에도 들르지 못하고 일하다가 불려와 곡괭이나 호미를 들고 있는 배심원도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 사이를 뚫고 법정으로 나갔다. 자신이 왜 이 법정에 서야 하는줄도 모르고…. 단지 그의 마음 속에는 자신이 억울하게 죽는 것보다 아테네 시민들이 자신을 처형한 사실 때문에 후대에 비난 받지나 않을까 염려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은 이미 살 만큼 산 나이이기에 자연히 죽을 것이므로 그때까지만 잠시 기다려주면 고소한 사람들이 오명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법정은 소크라테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낭만적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거의 27년을 끈 펠레폰네소스 전쟁의 여파로 아테네는 지독한 정치적 혼란이 일었고 아테네는 전쟁이 끝나자 자신들이 오래동안 지켜왔던 민주제를 폐지하고 30인의 참주가 지배하는 공포정치를 겪었다. 이후 민주제는 겨우 회복되었지만 사회 전체가 전쟁의 폐해로 불안정하였다. 이런 와중에 아테네의 소피스트들은 각자의 주장대로 민주제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권력과 부에 집착하는 자에게 명확한 사고와 올바른 행동으로 영혼을 향상시키는 삶을, 맹목적으로 전통을 추종하는 자에게 기존의 가치를 비판적으로 다시 생각할 것을, 국가의 권위에 무조건 복종하는 자에게 자율적 양심에 따라 국가의 명령을 거부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이러한 소신으로 소크라테스는 도망치라는 권유도, 철학을 포기하라는 법정의 조건부 타협도 모두 거부하고 자신의 원칙대로 권력자들을 신랄히 비판하고, 자신을 신이 보낸 쇠파리에 비유하며 배심원들을 심기를 도발케하는 언사를 서슴없이 내뱉으며 자신에게 씌워진 혐의를 9시간 30분 동안 하나 하나 반박하면서 결국 죽음을 자초하고 만다. 1차 평결에서 무죄라고 했던 배심원들초차 2차에서는 사형으로 돌아서고 말았다. “죄가 없지만 죽여라!”.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명제만을 중얼거리며 쓰러져 갔다. 배심재판의 한계만을 남기며…..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미국의 새너재이의 지방법정에 불려나온 배심원들은 소크라테스에게 사약을 마시게 한 판결을 내린 배심원들처럼 그들의 손에는 집안 일이나 농사 일을 하는 곡괭이나 호미를 들고 있지 않았지만 2400년 전 아테네의 아고라 법정과 너무나 흡사한 모습이었다. 그들의 면면은 이렇다. 도시락 조리사, 사회복지사, 영업직 회사원, 전기기사, bike shop 매니저와 시청 직원등이다. 더구나 이들은 스티브 잡스의 죽음을 애도했던 이웃들이다. 매일 신문 지상이나 매스컴으로 애플의 신화를 듣고 보고는 애국심의 발로를 느꼈던 사람들이다. 꺼져 가는 미국의 경제를 살리는 유일한 기업,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윤을 남기는 미국의 대표적 기업인 애플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이다. 더구나 여기에 새너재이의 평결이 나오기 이틀 전 한국에서 애플이 삼성의 기술 2건을 침해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치 이번 평결을 런던 올림픽의 금메달을 놓고 벌이는 경기 정도로 보고 자국 선수를 응원하는 심정으로 법정에 임했을 수도 있다. 소크라테스에게 죄가 없음을 알면서도 자기들의 심사를 건드렸다고 사형 평결을 내린 아테네의 배심원들처럼 말이다. 그래서 어떤 법조인은 배심재판은 나쁜 말로 표현하면 인민재판이라고 했다. 과연 미국의 배심재판이 정당한 제도일까? 돈을 물쓰듯 쏟아 부은 OJ 심슨의 피뭍은 장갑이 그 법정을 비웃고 있었듯이 말이다.

아직 모든 결정은 끝나지 않았지만 민주주의의 꽃인 자유시장주의의 신봉자들이 모여 사는 미국에서 전문가들도 제대로 알 수 없는 특허권 재판을 전문가들도 아닌 일반 시민들이 수백개의 힝목을 평가하고 피해금액을 산정하는 일에 단 이틀이 걸렸다는 소식을 소크라테스가 들었다면 지하가 떠나가게 웃고 있을 일이다.

마치 죄없이 인민재판으로 몰아붙이는 빌리도의 법정에 서신 예수님의 모습이 떠 오르는 것은 너무 심한 비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