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의 가장 큰 축복 중의 하나는 교회를 통해 훈련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교회는 어린 자녀에서부터 장년 또 노년에 이르기까지 성도들을 끊임없이 교육한다. 서양은 공식적인 교육기관이 거의 없던 시기에 교회는 교육과 훈련의 중심이었으며 서양 대부분의 교육기관은 교회로부터 시작됐다. 중세의 대학들이 그랬고 현재 미국 최고의 학부로 인정받는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등 대부분 명문 교육기관도 다 교회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랬던 미국의 교육기관이 교회와 멀어지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미국 사회가 급속히 더 세속화 되어 왔다. 그래서 교회의 일각에서는 이렇게 세속화된 미국 사회를 개혁하는 길은 다시 한 번 교회가 직접 교육의 현장으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흔히들 학교를 상아탑이라고 표현하며 현실과 동떨어진 곳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교회야말로 자칫 잘못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곳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교회와 성도는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통할 수 있는 내용을 훈련하고 훈련받아야 한다. 현장에서 통할 수 있는 신앙의 훈련은 어떤 것일까? 모든 훈련이 다 그러하지만, 그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은 어느 곳에서든 섬김과 봉사를 할 수 있는 마음과 습관의 훈련이다.

지난주 한 집사님 가정을 방문했다가 아주 유쾌한 소식을 들었다. 부동산 경기침체 때문에 집값이 많이 하락했는데 다행히 이 집사님은 대출금을 아주 좋은 조건으로 재조정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었는가를 설명하시는데 집사님의 설명대로라면 그것은 섬김의 축복이었다.

이 집사님이 대출금을 좀 조정받기 위해 변호사 사무실에 갔을 때 수많은 사람이 변호사 사무실의 직원들에게 따지듯 큰소리를 치고 불평들을 늘어놓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 불평을 듣는 변호사 사무실의 직원들도 무척 힘들어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본 집사님은 변호사 사무실 직원들에게 조그마한 홍삼 사탕을 나누어 주며 얼마나 수고가 많으냐고 위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다음에 들를 때도 또 그렇게 홍삼 사탕을 하나씩 나누어 주며 수고하는 분들을 위로했다.

모두 다 자기 사정을 먼저 봐 달라고 불평하는 사이에, 작은 홍삼 사탕 하나라도 주며 위로하는 이 집사님을 조금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집사님은 그곳에 갈 때마다 홍삼 사탕 하나의 사랑을 전했고 그러다 마음이 내키면 시원한 음료수를 한 상자 사 들고 가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섬김을 실천하던 어느 날. 저 밑에 있던 집사님의 파일이 제일 위로 올라와 있는 것이 보였다고 한다. 이후 일사천리로 일이 처리돼 아주 만족스러운 대출조정을 받으셨다고 하신다. 이 집사님은 가끔 구역예배로 자신의 집을 방문하면 아내를 도와 섬기는 모습이 언제나 시원스러운 분이었다. 타고난 모습이 싹싹하기도 했겠지만 그런 섬김의 훈련을 통해 좋은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섬김의 훈련은 전혀 뜻 밖의 곳에서 축복을 가져왔다. 섬긴다는 것이 꼭 이렇게 금전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교회 안팎에서 부지런히 섬김을 훈련하고 실천하면 좋은 열매가 맺혀질 것은 분명하다. 모든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서 섬김을 실천하여 축복 받기를 간절히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