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누구나 선하게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에게 선을 베풀고자 하며 심지어 선한 행위를 나타내 보이고 싶어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느 때는 평소보다 좀더 예의 바르게 행동하기도 합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미국 동부 버지니아 주에서 교회를 섬길 때였습니다. 교회를 새로 찾아온 중년 부부의 집을 아내와 함께 심방했습니다. 그 가정에서 정성스럽게 준비한 식사도 하고 즐겁게 대화도 나누며 그분들을 축복해 드리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귀가할 시간이 돼서 차가 주차돼 있는 곳으로 그 부부와 함께 갔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사는 동안 남편들이 아내가 먼저 차에 오르도록 자동차 문을 열어 주고 그 후에야 운전석으로 가는 것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그래서 모처럼 신사도(紳士道)를 발휘해 본다고 아내가 평소에 앉는 운전석 옆자리로 가서 차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아내가 마치 자기가 운전을 하려는 것 같이 운전석 쪽으로 가서 문을 여는 것이 아닙니까? 아내는 내가 자신을 위해 문을 열어준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 부부가 “목사님, 평소엔 사모님 차문을 열어 주시지 않는 모양입니다”하고 말해 모두들 파안대소 했습니다. 아내는 평소에 하던 그대로 당연히 제가 가는 차의 반대쪽 문이 자기 자리라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이 당혹스러운 경험은 저의 삶에 좋은 교훈을 던져주는 재미있는 에피소드이기도 합니다.

저에게는 때론 선을 행하려 하는 모습도 있지만 저 역시 제 안에서 악이 순간적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놀라기도 합니다. 그럴 때 저는 저의 악한 생각 또는 악한 모습에 대해 타당한 이유들을 내세웁니다. “이것은 이래서, 이럴 수 밖에 없었다고”, 때로는 “이것은 누구 때문에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우리는 마음 속으로 또는 밖으로 이러한 이유들을 열거하며 우리 안에 본래 악한 것이 없다고 말하며 이 문제에서 자유로워지고자 합니다. 이러한 이유를 규명한 것만으로도 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사람을 보고 연구하면 할수록 매우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신의 가슴 속에 쌓여 있는 것이, 혹은 자신이 늘 해오던 방식이 행동으로 혹은 말로 표현돼 나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진리를 쉽게 설명하시기 위해 간단한 예를 드셨습니다. ‘나무의 열매를 보면 그 나무가 어떤 종류인지 알 수 있지 않은가? 열매의 질이 좋지 않는 것이면 그 나무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이고, 그 열매의 질이 좋으면 당연히 그 열매를 맺는 나무도 질이 좋은 것이라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찌르는 가시나무에서 맛있는 무화과(無花果) 열매를 딸 수는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또는 찔레나무에서 사람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는 포도 열매를 거둘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매우 당황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적당히 변명하며 비껴가고자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도전하십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제 안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어쩌다 선한 일을 할 수 있지만 악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종종 과거의 악했던 모습들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그 때는 그것이 악인 줄, 죄인 줄 몰랐다가 시간이 지나고 성숙해지면 잘못된 것인 줄 깨닫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 여러분은 이것을 어떻게 해결하십니까? 악한 행동에 대해 보상하고자 하는 작용으로, 또는 후회하는 마음으로 자선을 베풀거나 선한 행동을 하지는 않습니까?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이것으로 이 문제를 다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예수님만이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 문제를 해결하시고자 예수님을 보내셨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를 위해 우리 대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것을 믿음으로써 우리 안의 악의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고 받아들이며 우리 자신 안에 쌓아 놓았던 악들을 고백할 때 우리 안에 쌓여 있는 악의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에 모시고 살 때 우리 안에서 선한 것들이 나올 수 있습니다.

사람이 교양을 쌓으면 좋은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죄된 근본 성품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제 안에 있는 악으로 인해 절망하거나 실망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우리 안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과 우리를 위해 생명을 주신 예수님께 감사하며 제 마음에 예수님을 초대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해보시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