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벳 짜르타 조각 (Izbet Zartah Ostracon)

나에게는 보물 지도가 하나 있다. 내가 갖고 있는 보물 지도는 노다지를 밭에 묻어두고 표시해 둔 그런 지도가 아니다. 이스라엘에서 성경의 현장을 탐방할 때마다 언제나 정확한 성경의 세계로 인도했던 지도를 말한다. 이 지도는 ISRAEL 1:100,000이란 제목으로 카르타 (Carta)에서 출판된 지도 책을 말한다. 나는 이 지도를 1994년 예루살렘 벤예후다 거리 (Ben Yehudah St.)의 스테이마쯔키 서점 (Steimatzky Bookstore)에서 구입했다. 책의 겉 표지는 사해를 접하고 있는 서쪽, 유대 광야의 미쯔케이 드라고트 (Mizuqei Dragot) 광야 사진으로 장식되었다.

이 지도 책을 구입한 후 나는 히브리 대학 도서관에서 몇 일 동안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하였다. 내가 몰두했던 일은,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에 위치한, 역사 지리학자들에 의해 그 위치가 확정된 성경적-고고학적-이스라엘의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들을 모두 지도 책에 표시하는 일’이었다. 그런 후에 이 지도 책은 2003년 이스라엘을 떠나기까지 성경의 역사 지리적인 배경을 연구하는데 가장 중요한 안내서가 되었다. 지금도 나는 이 보물 지도를 열어볼 때마다 성경의 세계를 다녔던 숱한 기억들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성경의 현장들을 탐방할 때마다 반드시 챙겼던 몇 가지 품목들이 있다. 성경, 현장에 대한 백과 사전이나 논문 그리고 바로 이 보물 지도이다. 일반인들에게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기 전 나는 필름 카메라를 들고 성경의 현장들을 누비고 다녔다. 이삭이 기근을 피하여 머물렀던 그랄 (창 26),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피신했던 시글락 (삼상 27:6)도 나는 이 지도의 도움으로 그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블레셋이 진을 쳤던 아벡, 블레셋에 맞서 전쟁에 나선 이스라엘 백성이 진을 쳤던 에벤에셀도 이 지도를 통해 그 정확한 장소를 찾은 것이다.

많은 역사 지리학자들은 사무엘상 4:1절에 기록된 에벤에셀을 아벡의 동쪽 약 3.2km 떨어진, 이즈벳 짜르타 (Izbet Zartah)로 이해한다. 이즈벳 짜르타는 유대인 도시인 로쉬 하아인 (Rosh haAyin)에 있다.

아벡을 발굴하던 텔아비브 대학의 고고학자들은 1976년 8월 아벡 근처의 유적지들도 조사하면서, 아벡의 동쪽에 위치한 한 작은 언덕을 주목하였다. 이곳은 1에이커에 불과한 작은 언덕이다. 고고학자들은 이 작은 언덕에서 3천년간 자연스레 쌓인 먼지와 흙더미를 거두어내므로, 이스라엘 시대의 전형적인 주택 (four room house)을 발굴하였다. 그리고 거두어 낸 흙더미 속에서 고대 히브리어가 기록된 토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토판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고대 히브리어로 기록된 이 토판은 1935년 스타키 (J. L. Starkey)가 발굴한 라기스 궁전 계단에 새겨진 알파벳 5 글자보다 약 400년이나 앞서고, 1908년 마칼리스터 (R. A. S. Macalister)에 의해 발견된 게셀 캘린더보다도 약 200년이나 오래 되었다. 게셀 캘린더는 이즈벳 짜르타 토판이 발견되기 전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 문서에 속하였다.

이 중요한 알파벳 토판은 이즈벳 짜르타의 발굴 봉사자로 참여했던, 텔아비브 대학 학생인 아르예 본스타인 (Aryeh Bornstein)의 눈에 우연히 띄었다. 본스타인은 유적지를 어떻게 발굴해야 하는지에 대한 전문 지식은 없었지만 그러나 유적지에서 사람의 손길이 닿은 것은 어느 것 하나라도 소홀히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본스타인은 유적지에서 걷어낸 흙더미 속에서 무엇인가 문자가 기록된 듯한 깨진 토기 조각을 보았다. 흙더미에서 토기 조각을 골라낸 본스타인은 그것을 함께 발굴에 참여한 친구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누구도 토기 조각에 긁힌(?) 것을 문자라고 믿지 않았다. 그래서 본스타인은 토기 조각을 발굴 책임자에게 가져다 주었고 발굴 책임자는 당시 콘웰 대학의 고대 쐐기 문서를 오래 연구한 앗수르어 대가인 데이빗 오웬 (David Owen) 교수에게 조언을 구했다. 고고학자는 오웬 교수의 조언에 따라 토기 조각에 암모니아 용액을 조금 떨어뜨렸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토기에 긁힌 것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고대 문자란 것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동안 토판에 기록된 글자를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은 글자의 굵기나 깊이가 1/10밀리미터의 아주 가늘고도 얕게 쓰여졌기 때문이다.

3.5 X 6 인치 크기의 이즈벳 짜르타 토기 조각에는 모두 다섯 줄로, 적어도 85개의 고대 문자가 기록되었다. 처음 네 줄에 기록된 모든 문자들은 단어로서 아무 의미가 없는 알파벳들이 기록되었다. 아마도 이것은 예비 서기관이 알파벳을 연습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다섯 번째 줄에는 멤 (M)만 빠진 채 고대 히브리어 알파벳 22자가 완전한 형태로 기록되었다. 이것은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완전한 형태의 가장 오래된 고대 히브리어 알파벳 교본이다. 알파벳 교본이 부분적으로 발견된 적은 있었지만 페니키아, 히브리어 그리고 아람어의 알파벳 교본이 완전한 형태로 발견된 것은 극히 드물다.

그리고 이즈벳 짜르타의 토판에는 알파벳이 우리가 알고 있는 히브리어의 기록 방향인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여지지 않았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기록되었다. 그 이유는 토판이 기록될 주전 12세기에는 히브리어 알파벳 기록 방향이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 역시 이즈벳 짜르타 토판의 연대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성경의 세계를 사실 그대로 보아야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에벤에셀과 같은 장소는 항상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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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섭 목사는 성경의 사실적 배경 연구를 위해 히브리어를 학습하였고, 예루살렘 대학과 히브리 대학에서 10여년에 걸쳐 이스라엘의 역사, 지리, 고고학, 히브리인의 문화, 고대 성읍과 도로를 연구한 학자이다. 그는 4X4 지프를 이용하여 성경의 생생한 현장을 연구하기도 했다. 문의 jooseob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