팰리세이드교회(담임 임정섭 목사)가 지난 6월부터 7월7일까지 약 2주간 특별한 새벽기도를 열었다. 바로 상반기를 정리하면서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하반기를 힘차게 맞이하기 위해 진행된 ‘Half Time 특새’다.

팰리세이드교회는 이 기간 동안 주일을 제외하고 매일 새벽 5시30분 특별새벽기도를 열고 하루 하루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서 새로운 개인의 영적인 면들을 돌아보고 교회 공동체에게 주어진 과제를 살펴봤다.

팰리세이드교회는 현재 임정섭 목사의 부임 이후 성도들 간의 교제가 늘어나면서 교회 내 사역이 크게 활기를 띄고 있다. 잇따른 부목사 청빙도 교회에 활력을 더하는 요소다. 최근에는 뉴저지 지역의 청소년 사역을 오랜 기간 이끌어 왔던 전은일 목사를 청년 담당 부목사로 세웠다.

이번 ‘Half Time 특새’는 올해 부활절 특새에 이은 두 번째 특새로 틈만 나면 기도하자 임정섭 목사의 기도 철학에 기반하고 있다. 임정섭 목사는 “1년의 절반을 보내고 또 새롭게 시작하면서 기도를 통해 성도들의 마음에 결단을 갖고 새롭게 출발하자는 것”이라며 “기도 중에 올해 남은 6개월의 계획을 짜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또 임정섭 목사는 팰리세이드교회가 새로워져야 한다는 부분은 성도들이 같이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는 내용”이라며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지는데 다른 특수한 프로그램보다는 하나님이 만져주시고 새롭게 해주시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번 기간동안 임정섭 목사가 전한 설교는 팰리세이드교회의 현 상황과 과제를 잘 설명하고 있다. 특히 요21:1-9 말씀을 본문으로 했던 첫째 날 특새 말씀은 고기를 잡는 행동 가운데서 더욱 깊은 사랑의 동기를 강조했으며, 느헤미야 6장을 본문으로 한 특새 마지막 날 설교는 느헤미야의 이야기를 통해 하반기의 남은 기간 동안 영적인 긴장감을 갖고 가야함을 강조하고 있다. 다음은 ‘Half Time 특새’ 첫째날 설교 주요 내용.

요 21:1-9(2012년 6월 25일, 월요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에 제자들은 모두 자신들의 생업의 현장으로 돌아갔다. 과거에 어부였던 일부 제자들은 다시 바다로 돌아가 함께 있었다. 여럿이 모여 서로가 의지가 되고 재미도 있었을까?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제자들에게 있었던 것은 무슨 문제인가? 제자들이 함께 힘을 합해도 아무 소득이 없었다.

21:3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제자들이 배를 타고 열심히 그물을 던지는데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한다. 여러 명이 해도 안 된다. 주님을 쫓아다닌다고 3년을 쉬었더니 실력이 줄어든 것일까? 인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한다고, 전문가라고 다 잘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여럿이 힘을 합친다고 다 잘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성실히 살고도 얼마든지 실패하는 인생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면 예수를 안 믿었는가? 아니다.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확실히 알고 믿었던 사람들이 누가 또 있었는가? 그런데도 왜 고기는 한 마리도 못 잡았는가? 문제는 무엇인가? 4절에서 우리는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21: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님이 바닷가에 서 계셨으나 주님이 저들 중에 계신 것도 알아보지 못했다. 제자들은 그들의 삶의 현장에서 주님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 자기 일에 몰두하다 보니, 또 너무 바쁜 나머지 주님 오신 것도 모른다. 너무 분주해 주님도 몰라본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을 깨닫는다. 뭔가 바쁜데, 바쁘게 움직이는데 정작 중요한 것을 얼마든지 놓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몰두하고 분주하게 다니면서 참으로 가치 있는 것은 얻지 못할 수 있다. 고기를 위해서 제자들은 열심히 일했지만 정작 그 고기를 얻지 못했다. 이때 예수님께서 어떤 질문을 하시는가?

21:5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아주 중요한 질문이다. 어쩌면 이 말은 얼굴을 들 수 없게 하는 질문입니다. 사실 주님은 제자들이 고기를 못 잡은 것을 모르고 물으신 것이 아니다. 그러면 왜 물으셨는가? “너희들이 왜 거기있느냐”는 물음이시다.

이 질문에서 두 단어에 집중해보자.
첫째, “고기“란 단어다. 보통 물고기란 단어는 잌투스(ikthus)란 단어를 쓴다. 그런데 본문만큼은 예외적이다. 여기만 물고기를 프로스파기온(prosphagion)란 단어를 썼다. 이 단어의 뜻은 원래 물고기이긴 물고기 이지만 삶은 물고기, 즉 식탁 위에 올려지는 진미, 즉 진귀한 음식이란 단어다. 즉, 다시 해석하자면 “얘들아 너희가 정말 귀한 것을 얻었느냐?”는 뜻이다. 제자들로서 진정 귀한 것을 얻고 있느냐? 묻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그들에게 진짜 실패는 단순히 고기를 잡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들에 손에 있어야 할 것, 제자들이 붙잡아야 할 귀한 것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어떻게 부르시는가. “얘들아” 이것이 두 번째 눈에 띄는 단어다. 이는 파이디온(Paidion)이다. 이것은 아주 작은 아이들을 부를 때 사용하는 단어다. 이 단어를 성인에게 썼다는 것은 잘 이해가 안 된다. 무슨 의미일까? 과거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단 한번도 이렇게 부르신 적이 없다. 그러면 왜 이렇게 부르셨나?

제자들은 지금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 뭔지도 모르고 또 있어야 할 곳이 어딘지도 몰랐다.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을 모르고 있는 제자들이었다. 그들이 있어야 장소도, 무엇을 해야하는 지도 모르는 제자들이었다. 그래서 철없는 아이들 같은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이 “얘들아“하신 것이다.

지난 6개월을 열심히 살았다. 그런 우리에게 지금 예수님께서 “고기가 많이 있느냐” 물으신다면 어찌 답하시겠습니까? 신이 나서 사람들은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어 하겠는가? “돈 많이 벌었습니다!” “우수한 성적을 얻었습니다!” “집 많이 지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제자인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의 뜻은 “정말 중요한 것을 얻었느냐?” 하는 것이다.
주님은 제자들을 탓하시려고 던지시는 질문은 아니다. 다시금 일깨우시고자 던지는 질문이다. 그것을 보라는 것이다.

5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절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7절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예수님께서 찾아가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들은 많은 고기를 잡게 되었고 그것이 153마리나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더 중요한 것을 보게 되었다. 주님이시라! 훨씬 더 가치 있는, 비교할 수 없는 귀한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많이 잡은 물고기를 보고 제자들은 “야! 우리 돈벌었다” 하지 않았다. “주님이시라!” 참된 가치를 비로소 발견하게 된 것이다.

오늘 메마른 우리네 삶을 다시금 찾아오시고 숨가쁜 현실 속에서 그동안 제대로 보지 못했던 주님 을 다시 보도록 인도하신다. 가난하든 부유하든 다시 보아야 할 분 주님이시다. 신앙은 모든 상황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주님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주시라”는 그 한 마디에 모든 것을 걸고 주께 달려갔던 베드로를 다시금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