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가 후원하는 장영호 선교사님이 사역하는 러시아 쌍떼베쩨르를 방문했다. 박력있고, 호탕한 선교사님의 기질처럼, 러시아에서의 사역이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교단을 초월해서 선교사님들이 함께 힘을 모아 시작한 미르신학교, 그리고 함께 공동구입한 건물도 잘 사용되고 있음을 보았다. 그중, 쌍떼베쩨르의 고려사람들 모임과 고려인교회 주일예배는 나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왜 그러는지는 모르지만, 중국에서는 조선족이라 하는데,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에서는 고려인이라 부르는 것이 특색있다.

한국사람, 조선사람 혹은 고려사람이라 달리 부르지만, 피가 뭔지, 김치 맛에 끌리는 내 혀처럼, 러시아 고려인들을 향한 마음이 자석처럼 끌린다. 인자한 얼굴을 가진 고려인 할머니들은 정말 우리 할머니들과 똑같다. 우리 교회 연세 드신 권사님들과 구별이 안 갈 정도다. 그런데, ‘목사님’이라는 말만 한국말로 하고, 나머지는 유창한 러시아어로 말씀하신다. 목사 되기를 준비하는 김드미트리 전도사를 보면, 우리 교회 부목사님 같은데, 한국 말투는 북한말 같기도 하다.

벌써 3-4대에 걸친 이민의 역사 속에서 말은 변했지만, 문화와 한국사람다움은 신기할 정도로 공통점이 많다. 무엇이 그 민족성을 결정하는 것일까? 시간적으로 3-4대 이후 다시 만났는데도 서로에게 이끌리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냥 외지에서 만난 한국사람이라는 단순한 반가움일까? 성이 김씨라서 피가 부르는 원초적 본능일까?

유태인 출신 러시안교회 성도들과 고려인들과 그리고 이스라엘 선교에 뜻이 있는 아이리쉬 여선교사님과 미국에서 온 우리 부부가 함께 야외에서 바베큐를 했다.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비가 부슬부슬, 날씨는 을씨년스러워 공원에 사람 하나 없었지만, 비내리는 공원을 우리가 전세내고 사용하듯 한적하고 조용한 시간을 가졌다. 비가 내려도 숯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 먹었다.

역시 한국사람, 유태인, 그리고 러시아 사람이었다. 얼굴 생김새가 다르고, 말도 다르고, 느낌도 다르지만, 고려인교회에서 서로에게 끌리던 정과 사랑이 또 솟구친다. 고려인들에게 끌리던 것이 피 때문인 줄 알았는데, 아마, 민족성과 핏줄을 뛰어 넘는, 서로에게 끌리는 신앙의 자장이 있는 듯 하다. 한 성령, 한 믿음, 한 세례, 한 하나님 안에 있는 자들만이 경험하는 ‘보편교회’ 체험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