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간의 안식월 마지막 기간을 서울에서 보냈습니다. 서울에 도착한 날 서울의 모습은 마치 꽃밭을 연상케 했습니다.

여의도와 강남으로 가는 길은 흰색과 분홍색의 벚꽃이 만개하여 도심이 꽃 속에 존재하는지, 꽃이 도심 속에 존재하는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저를 태우고 가던 버스의 기사분은 벚꽃이 만개한지 2,3일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참 좋을 때 서울에 왔다는 것을 부각시켜 주었습니다. 적어도 두주 정도는 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라는 친절한 안내까지 덧붙이며 화창한 서울의 봄날에 대한 저의 기대감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저의 기대는 이틀을 가지 않았습니다. 봄의 향취를 시기라도 하는 듯 차가운 비바람이 갓 피어난 꽃망울을 떨어뜨렸고, 기온은 초겨울처럼 하강했습니다. 바로 이틀 전까지 가벼운 옷차림으로 봄기운을 즐기던 사람들은 두터운 외투를 꺼내 입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비가 그친 후 기온은 다시금 급상승하여 마치 초여름을 방불케 하는 날씨로 급변해 버렸습니다.

예로부터 4월은 봄의 계절이라 했습니다. 만물을 약동시키는 따스한 봄.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 봄이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겨울이 4월까지 연장되었고, 그러다가 바로 여름으로 접어드는 이상 기온이 몇년째 지속되고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은 10월까지 이어지다가 가을을 지나쳐 바로 차가운 겨울로 계절이 바뀌는 이상 기온. 아마도 지구 온난화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라 여겨집니다.

문제는 봄과 가을이 실종되어 가면서 사람들의 생활패턴 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낮과 밤기온의 편차가 심해지니 밤에는 겨울옷, 낮에는 여름옷을 챙겨 입는 기현상이 생긴 것입니다. 4계절이 분명한 한국이었지만, 지금은 계절의 개념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옷차림에도 여름옷과 겨울옷이 함께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날씨에 대한 감이 생기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농사를 짓는 분들도 씨뿌리며, 모심기를 해야하는 시기를 잡는 것이 어렵다고 말을 합니다.

당연히 찾아올 줄 알았던 계절이 실종되니 한국은 헷갈림 현상에 빠져들고 있는 양상입니다. 항상 그럴 것이라는 개념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런 양상은 계속 반복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수천년 동안 분명했던 4계절의 패턴이 2계절의 형태로 바뀌고 있는데 이에 대한 수용이 불분명하다면 한국은 상당기간 혼란스러움으로 갈팡질팡할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바뀌어갑니다. 그 변화는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바뀌는 것을 막아 보려고 안간힘을 쓴다는 것은 역부족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바뀌는 시대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입니다. 시대가 바뀌는 것에 바르게 대처하는 최선의 방법은 개념입니다. 개념을 빨리 정립시키는 것이 바뀌는 시대에 대한 가장 올바른 대처방법입니다. 성경은 분별을 강조합니다.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빌립보서 1:10)” 분별이란 개념정립을 뜻합니다. 세상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보다 세상의 흐름을 빨리 파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악한 것인지, 선한 것인지를 판단하여 이에 대한 태도를 결정짓는 개념정립이 혼돈스러운 세상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할 때 갈팡질팡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이 시대는 혼미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성경적 분별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