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람의 도시라는 시카고에서 오래 살았다. 긴 겨울 자동차를 덮을만큼 많은 눈이 시베리아 강풍을 타고 사정없이 몰아치면 도시는 얼어 붙는다. 길이 얼음판이 되어서 넘어져 다치거나 병원에 실려가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다. 재수 좋게 따뜻한 날이 오면 “매일 오늘만 같아라”하며 사람들은 만세를 불렀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미국의 북가주에 산다. 눈이라고는 볼 수 없고 강풍도 모르고 매일 온화하고 따뜻한 봄날이 계속되어 앞뜰과 뒷뜰에는 일년 내내 꽃이 만발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 좋은 자연 환경에 감사하고 감격하는 마음이 시간이 가면서 점점 미약해지다 못해 이제는 당연하게 여겨지고 오히려 지진이 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봄을 좋아하는 이유는 너무 덥거나 춥지 않고 더욱 만물이 소생하고 생동력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사람들은 봄날만 좋아 하는 것이 아니고 봄같은 사람을 좋아한다. 만나기만 해도 좋다. 환하게 언제나 웃는 그 얼굴을 보기만 해도 세상에서 당하는 그 많은 상처들이 치유를 받는다. 그런 분들은 섭섭한 일을 당해도 너그럽게 받아 넘기고 어떤 이익이 생기면 먼저 주위 사람에게 양보하고 반대로 어려움이 있으면 앞장 서서 해결하고 남에게 무엇인가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다.

그런 분에게 나 자신의 어려움을 털어놓고 실컷 울고 싶고 때로는 어린 아이처럼 자랑도 늘어놓고 그 분의 칭찬도 받으며 새로운 용기를 얻고 싶다. 그런 사람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물론 교회나 수도원, 아니면 학교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실망하고 돌아설 때가 더 많다. 차라리 내가 찾고 있는 사람을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게서 찾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다. 즉 내가 원하는 봄같은 사람을 나 자신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성숙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남들에게 무엇인가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어느 따뜻한 봄날 창가에 앉아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다가 옆을 보았다. 고양이는 소파에서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면서 졸고 그 밑에는 강아지가 네 다리를 쭉 펴고 코를 골며 잔다. 나도 낮잠을 자고 싶다. 그러나 벌떡 일어났다. 한 노인을 만나기 위해서다. 별로 하는 일 없고 찾아오는 이 또는 갈 곳이 없는 고독한 그를 만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친구가 되어 잠시라도 따뜻한 인정을 나누고 싶어서다.

하늘이 주신 온화한 봄날을 감사하며 나 자신이 봄같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멋진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