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586년 예루살렘은 바빌로니아의 침공으로 멸망하고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 갔습니다. 모든 것이 최악의 절망에 빠졌을 때,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애3:32-33)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근심과 고난에 처하게 하는 것 자체는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그 고난을 통해, 자기 자신을 버리지 못한 채 자기에게 집착해 욕망의 노예가 되어 허망하게 인생을 망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바로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19년 전에 이미 다니엘과 에스겔 등을 미리 바빌로니아로 보내셔서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 세우실 계획을 진행하고 계셨습니다.

요즈음 경제, 사회 등의 여건 악화로 참 힘든 이민 생활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주님의 본심이 아님을 잊지 마십시오. 주님의 본심은 우리를 진리의 사람으로 바로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만약 내게 어려움이 없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거나 의지하겠습니까? 우리에게 근심과 고통이 없다면 우리가 어찌 사회적, 경제적 정의와 개인적 정직, 그리고 일을 추진함에 있어 하나님의 말씀 순종함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본심이 있습니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그 아들을 십자가에 죽이신 것은 그 아들의 죽으심을 통해 온 인류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와 같은 깊은 하나님의 본심을 보아야 합니다. 또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잠잠히 내어 놓으시며 “다 이루었다” 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대체 어떤 분이시겠습니까?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하신 그 분의 본심이 우리를 해롭게 하는 것이겠습니까?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절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소망만 있을 뿐입니다. (롬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지선 양의 책 <지선아 사랑해>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누군가 제게 물었습니다. 예전의 모습으로, 사고 나기 전 그 자리로 되돌려 준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바로 간다고 할 지 모르겠지만 제 대답은 ‘되돌아 가고 싶지 않다’입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고 있고, 또 지금 제 안에 담고 있는 고난이 가져다 주는 축복의 보물들을 정말 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고 이후 제 삶을 통해 예전에는 몰랐던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되었고, 그 분의 사랑을 맛보았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것 안에 있습니다.”

문제와 어려움만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하나님의 본심을 알게 될 때, 우리에게 참된 자유와 기쁨이 넘쳐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본심을 깨닫는 그 때부터 미래와 소망이 생깁니다. 문제를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심을 아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