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60에 환갑 잔치 한다”는 말은 옛 고전에서나 찾아야 하고 “적어도 80세까지는 살아야지” 하는 시대도 옛 이야기가 되고 지금은 “99-88-23-1”의 시대에 산다. 즉, 99세까지 88(팔팔)하게 살다가 2, 3일 앓고는 1(하루)만에 다시 일어나서 살고 싶은만큼 산다는 뜻이다.

하기는 100살을 넘긴 나이에 시집을 낸다든지 한국에 있는 증손자 결혼식에 갔다 왔다든지 전신 마취를 하고 긴 시간의 암 수술을 성공리에 끝냈다는 뉴스를 들어도 요즘을 사는 우리는 “그럴 수도 있지”라며 크게 놀라지도 않는다.

현대 의학의 끝없는 발전이 사람의 생명을 얼마나 연장시켜 줄지 누구도 모른다. 바라기는 인류의 시초인 아담이 930세까지 살았으니 그 후손들도 그 할아버지 만큼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은근히 해 본다.

거북이는 별로 움직이지 않아도 300년을 산다고 하는데 사람도 큰 활동을 안 하고도 그렇게 오래 살 수 있을까? 정말 거북이처럼 오래 산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사는 보람이 없을 것 같다. 오래 사는 데에는 건강이 필수적이고 또한 경제적인 뒷바침도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래 산다는 것은 오히려 고역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며 길고 긴 시간을 메우느냐” 하는 것이다. 젊어서는 공부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들, 딸 낳아서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 보내느라 정신 없이 뛰면서 시간에 쫓겨 살았다. 그러나 은퇴 후 활동 무대에서 내려와 조역을 하다가 시간이 지나가면서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점점 사라지는 것이 인생의 보통이다.

그러나 이때야말로 제 2의 인생이 시작되는 좋은 기회다. 그 많고 많은 시간을 새로운 활동무대에서 보람있게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내 가족과 직장이 전부였지만 이제는 그 범위와 대상자가 넓어진다.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 즉 오랜 병석에서 고생하는 분들, 의지할 곳 없고 할 일 없는 노인들, 고아나 어린 소년 소녀 가장들, 외국에서 온 노동자들, 목숨을 걸고 탈북한 실향민들, 장애자들, 믿었던 친구에게 사기 당하고 거지가된 분들 등 찾으면 끝도 없이 많다. 그런 분들의 친구가 되어 동고동락하며 그들에게 삶의 용기를 주는 일은 끝도 없이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붓는 일이다. 내가 아는 김 선생은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고 세상에서 안 해 본 일 없이 고생했기에 자기처럼 고생하는 사람들을 돕는 일에 앞장선다. 자신이 은퇴한 후에는 정기적으로 노인 아파트를 찾아가서 여러가지로 심부름을 한다. 노인들이 원하는 물품을 사다 드리거나 편지를 써 주거나 읽어 드리고 병원 가는 것, 약국 가는 일을 돕고 자주 그들과 같이 웃고 웃으며 즐겁게 많은 시간을 보낸다. 매주 한 번 이상 전화로 안부를 묻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아픈 분에게는 직접 찾아가 기도해 드리고 생일에는 카드를 보낸다. 그는 시간이 모자라게 일한다.

놀라운 일은 그렇게 열심히 헌신하는 그 분은 주는 것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그 분은 70을 넘겼으나 건강 나이는 50, 일하는 나이는 40, 사랑의 나이는 30이다. 그 분이 가는 곳마다 따뜻한 온기가 풍기고 많은 분들이 오래 오래 같이 있고 싶어 한다. 김선생 자신도 신나고 즐겁게 건강하게 산다. 99 88 23 1 너무도 좋은 세상에 우리는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