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이 새롭게 되려는 데에 가장 큰 걸림돌이 무엇일까요? 바울이 기록한 고린도 전서를 보면 그 첫 문제가 신앙의 강조점이 서로 달라서 생긴 문제였습니다. 또한 여러 가지 교회안의 분쟁이 있었기에 바울은 “이러한 분쟁과 싸움이 있는 곳에는 사랑이 우선이다!”라며(고전13장의 유명한 사랑 장) 권면과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두번째 보낸 고린도 후서에 보면 ‘잘못된 사상과 거짓 선생’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이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고후4:16~18절의 말씀으로 새롭게 될 수 있는 이유와 힘을 제시했습니다. 왜, 우리가 새롭게 되는 힘을 상실했을까요?
그것은 겉 사람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즉 바울이 말 한대로 표현한다면, 겉 사람에 관심을 두기 때문입니다. 겉사람은 물질을 좋아합니다. 우리가 너무 물질을 좋아하니 그것을 얻으려면 뒤에서 숨어서 부끄러운 일을 해야 하고, 남을 적당히 속여야 하는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이 새로워 지기가 힘들다고 지적합니다.
둘째로, 결손가정의 자녀들이 부모의 사랑을 못 받아서(가난)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부모님들의 말과 실천이 같지 않아서 더 큰 혼란과 불신을 가져서 그렇게 된다고 합니다. 세상사람들에게 전도가 되지 않는 이유도 간단합니다. 사랑을 실천하고 모범을 보여야 할 크리스천들이 말과 행위가 일치가 안되니 전도가 막히고 우리들도 새로워지려는 데에 마음처럼 쉽지 않은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는 “그래, 주님의 내 주인이고, 생명이다” 라고 심정과 말은 했는데, 실상 본심은 돈과 세상명예욕을 은근히 탐하는 모습을 하고 있으니, 그런 상태로는 “새로워질 수 없다!”고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과감하게 편지를 쓴 것입니다. 왜 말과 실천이 온전히 일치를 못합니까? 왜 거짓 선생들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사랑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일어납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겉사람의 속성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겉사람의 속성은 시간이 지나가면 불안해 합니다. 돈과 명예 그리고 믿었던 육신이 약해져서 그래서 자신이 쇠하여 감을 걱정합니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다는 것은 그만큼 죽음에 한 걸음 다가간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의 경과에서 불의가 쇠잔하고 하나님의 정의가 나타나며 진실이 드러나고 진상이 밝혀지는 것을 볼 수 있으니 또한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래서 바울은 이런 현실에 “낙심하지 않는다”고 선언했습니다다(고후4:16). 그 이유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늙어지고 없어지는 것은 겉 사람과 돈 이지, 예수께서 살리신 우리 속사람은 나날이 새로워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육신의 눈이 희미해질 때 영의 눈이 밝아져 하나님의 모습이 더 뚜렷이 보이고, 육신의 귀가 어두워질 때 하늘의 음성이 더 분명히 들려오고, 기억력이 희미해 질 때 과거의 은총이 더 똑똑히 기억난다. 이렇게 주변의 모든 것이 죽어가고 낡아지고 소모되어 가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새로움을 경험할 수 있기에 하나님만이 새롭게 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겉사람으로 하여금 늙도록 둡시다! 그것은 우리가 좌우할 영역이 아닙니다. 그러나 새해에는 속사람이 나날이 새로워지는 한 해가 되도록 합시다! 늙음을 늙음대로 수용하고 수렴합시다! 늙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도 믿음이 없는 연고인 것입니다. 오직 새롭게 될 수 있는 참다운 힘은 ‘우리들이 무엇을 완수했는가 보다는 무엇을 다시 시작하느냐?’이고, ‘우리가 무엇을 소유했는가 보다는 무엇을 바라보는가?’에서 옵니다. 그래서 새 해가 있는 이유는 새로이 결단하고 다시 고쳐 쓰고, 다시 시작하고 또 출발하라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미래를 모른다 아니 알 수 없는 존재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미래를 모르게 하셨던 것이 더 맞는 말일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겐 축복입니다. 미래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새 해가 올 때마다 새로운 계획을 세웁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더 새로워질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고, 2012년 새 해는 이러한 새 꿈을 가진 사람들로 인해 더 새로워 질 것입니다. 우리가 새로워 질 수 없는 이유는 지나간 죄악(혹은 2011년의 불미스러운 일들)에 사로잡혀 있을 때이다. 새로워지려는 것에 대한 인류 최대의 난적인 사탄의 죄와 악을 그리스도 예수께서 해결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새 해를 희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최소한의 살아갈 물질과 돈 이외에 너무 마음을 두어 더 이상 속이지 말고, 이중적인 삶을 접고, 말과 행실이 일치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님의 권능을 받아 비로소 새로워 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올 한 해 우리들이 주님으로부터 새로운 힘을 받아 모여서 나눈다면, 반드시 북녘의 동족들에게도(세상의 불신과 방종에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알리려고) 우리 주님께서 새로워 질 수 있는 힘을 불러 모아 주실 것이리라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고후4:16).
그런데 두번째 보낸 고린도 후서에 보면 ‘잘못된 사상과 거짓 선생’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이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고후4:16~18절의 말씀으로 새롭게 될 수 있는 이유와 힘을 제시했습니다. 왜, 우리가 새롭게 되는 힘을 상실했을까요?
그것은 겉 사람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즉 바울이 말 한대로 표현한다면, 겉 사람에 관심을 두기 때문입니다. 겉사람은 물질을 좋아합니다. 우리가 너무 물질을 좋아하니 그것을 얻으려면 뒤에서 숨어서 부끄러운 일을 해야 하고, 남을 적당히 속여야 하는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이 새로워 지기가 힘들다고 지적합니다.
둘째로, 결손가정의 자녀들이 부모의 사랑을 못 받아서(가난)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부모님들의 말과 실천이 같지 않아서 더 큰 혼란과 불신을 가져서 그렇게 된다고 합니다. 세상사람들에게 전도가 되지 않는 이유도 간단합니다. 사랑을 실천하고 모범을 보여야 할 크리스천들이 말과 행위가 일치가 안되니 전도가 막히고 우리들도 새로워지려는 데에 마음처럼 쉽지 않은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는 “그래, 주님의 내 주인이고, 생명이다” 라고 심정과 말은 했는데, 실상 본심은 돈과 세상명예욕을 은근히 탐하는 모습을 하고 있으니, 그런 상태로는 “새로워질 수 없다!”고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과감하게 편지를 쓴 것입니다. 왜 말과 실천이 온전히 일치를 못합니까? 왜 거짓 선생들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사랑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일어납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겉사람의 속성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겉사람의 속성은 시간이 지나가면 불안해 합니다. 돈과 명예 그리고 믿었던 육신이 약해져서 그래서 자신이 쇠하여 감을 걱정합니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다는 것은 그만큼 죽음에 한 걸음 다가간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의 경과에서 불의가 쇠잔하고 하나님의 정의가 나타나며 진실이 드러나고 진상이 밝혀지는 것을 볼 수 있으니 또한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래서 바울은 이런 현실에 “낙심하지 않는다”고 선언했습니다다(고후4:16). 그 이유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늙어지고 없어지는 것은 겉 사람과 돈 이지, 예수께서 살리신 우리 속사람은 나날이 새로워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육신의 눈이 희미해질 때 영의 눈이 밝아져 하나님의 모습이 더 뚜렷이 보이고, 육신의 귀가 어두워질 때 하늘의 음성이 더 분명히 들려오고, 기억력이 희미해 질 때 과거의 은총이 더 똑똑히 기억난다. 이렇게 주변의 모든 것이 죽어가고 낡아지고 소모되어 가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새로움을 경험할 수 있기에 하나님만이 새롭게 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겉사람으로 하여금 늙도록 둡시다! 그것은 우리가 좌우할 영역이 아닙니다. 그러나 새해에는 속사람이 나날이 새로워지는 한 해가 되도록 합시다! 늙음을 늙음대로 수용하고 수렴합시다! 늙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도 믿음이 없는 연고인 것입니다. 오직 새롭게 될 수 있는 참다운 힘은 ‘우리들이 무엇을 완수했는가 보다는 무엇을 다시 시작하느냐?’이고, ‘우리가 무엇을 소유했는가 보다는 무엇을 바라보는가?’에서 옵니다. 그래서 새 해가 있는 이유는 새로이 결단하고 다시 고쳐 쓰고, 다시 시작하고 또 출발하라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미래를 모른다 아니 알 수 없는 존재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미래를 모르게 하셨던 것이 더 맞는 말일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겐 축복입니다. 미래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새 해가 올 때마다 새로운 계획을 세웁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더 새로워질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고, 2012년 새 해는 이러한 새 꿈을 가진 사람들로 인해 더 새로워 질 것입니다. 우리가 새로워 질 수 없는 이유는 지나간 죄악(혹은 2011년의 불미스러운 일들)에 사로잡혀 있을 때이다. 새로워지려는 것에 대한 인류 최대의 난적인 사탄의 죄와 악을 그리스도 예수께서 해결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새 해를 희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최소한의 살아갈 물질과 돈 이외에 너무 마음을 두어 더 이상 속이지 말고, 이중적인 삶을 접고, 말과 행실이 일치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님의 권능을 받아 비로소 새로워 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올 한 해 우리들이 주님으로부터 새로운 힘을 받아 모여서 나눈다면, 반드시 북녘의 동족들에게도(세상의 불신과 방종에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알리려고) 우리 주님께서 새로워 질 수 있는 힘을 불러 모아 주실 것이리라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고후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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