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는 평생 설교와 함께 웃고, 설교와 함께 운다. 지금까지 나는“설교준비”가 머리에서 떠나본 적이 없다. 어떨 때는 설교준비 안하고 살아 보았으면 생각했다가, 어떨 때는 설교하고 싶어서 목말라 할 때도 있다. 목회 초년병 시절에는 설교에 은사가 없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이 나를 목회자로 부르신 소명 자체에 회의를 가진 적도 있었다.

설교준비에는 대략 세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설교원고 작성이다. 아마, 교인들은 설교준비가 설교원고 작성으로 끝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매주 설교준비가 원고작성에 그 대부분의 시간이 사용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때 신학교때 배운 신학이 진가를 발휘하고, 지금까지 읽었던 책과 시사성 있는 글들이 총동원되어 설교원고가 작성 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작업이 가장 기본적이고, 제일 중요한 것임에도 설교준비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두 번째 해야 할 설교준비는 소위 효과적 전달을 위한 준비이다. 설교기술이 이에 속한다. 이것은 결코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아니다. 신학교를 입학한 85년부터 시작된 설교사역은 어느새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오늘도 이 준비는 부족한 듯 하여 배우려고 애를 쓴다. 무의식중에 내뱉은 상투 어구는 없는지, 청중들에게 방해가 되는 몸동작은 없는지, 늘 살피곤 한다. 문법적 잘못은 없었는지, 잘못 사용한 단어는 없었는지도 꼭 모니터링 한다. 거기에 요즘 소위 미디어 시대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없는지, 첨단 기술에도 가까워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애를 쓰면서도 설교준비에 항상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로이드 존슨 목사님의 말씀이 머리를 때린다.“설교가 준비되기 전에 설교자가 준비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이 나를 왜 이렇게 부끄럽게 하는지, 목표점을 향하여 달려가다가 갑자기 향방을 잃어버린 달리기 선수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선배 목사님들을 통해서 설교준비의 중요성에 대해 귀에 따갑게 얘기 들었고, 나도 후배들에게 설교준비에 대한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하서도 설교준비보다 설교자가 준비되어야 한다는 명제 앞에 설교원고를 덮고 무릎을 꿇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도 내 설교를 듣고 있는 교인들 가운데는 나와 학교를 같이 다닌 중학교 동기동창이 있다. 나의 청년시절 나를 가르쳐 주신 장로님도 계신다. 신학교 시절 하늘 같았던 선배님도 앉아 계신다. 아니,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 주신 부모님도 앉아 계신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일 나와 함께하는 분신 같은 아내도 앉아 있다. 오늘도 설교원고만 들고 강단에 서는 자가 아니라, 세 번째 설교준비인, 준비된 설교자로 서야한다는 도전 앞에 하염없이 작아진 나의 모습을 예수님께서 가려주시기만을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