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새벽예배. 한국교회 부흥의 첫 번째 원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척교회부터 대형교회에 이르기까지 성도들의 신앙성숙과 더불어 부흥을 소망하는 곳에는 새벽예배의 열기가 더욱 뜨겁다. 이에 기독일보는 남가주 한인교회들의 새벽 설교를 집중 조명하여 새벽제단에서만 내리는 특별한 은혜를 나누고 개교회를 넘어 지역과 미주 전역의 부흥을 함께 소망하고자 한다.

2011년 11월 15일
본문 : 행 10:24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10:25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10:26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10:27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이 모인 것을 보고
10:28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10:29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10:30 고넬료가 이르되 내가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10:31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10:32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바닷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느니라 하시기로
10:33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본문은 고넬료와 베드로가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이방인에게 처음으로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는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베드로가 가이사랴의 고넬료 집에 도착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성령의 역사하심의 결과입니다. 고넬료와 베드로가 기도 중에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던지 누구를 만나던지 간에 성령께서 역사하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늘 우리는 성령께서 도우시고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의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24절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고넬료는 친구와 친척들을 불러놓고 기다렸습니다. 여기서 그의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오겠다고 말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이미 베드로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말씀에 조금도 오차가 있을 수 없음을 믿었습니다. 믿음이란 준비해 놓고 결과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린 결과를 예측하고 확인하면서 준비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고넬료는 베드로가 온다는 어떤 약속도, 확신도 없었지만 성령께서 진행하시는 일 가운데, 확신 가운데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25절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자 고넬료는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려 절했습니다. 백부장인 그가 얼마나 겸손하고 순전한 사람인가 알 수 있습니다. 10장 2절에 고넬료에 대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누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까? 그는 사람에게 허리를 굽힐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는 사람은 사람도 경외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 모든 사람에게 있음을 알고 어떤 사람을 대하든지 하나님을 대하는 것처럼 대합니다. 골3장에서도 ‘무슨 일을 하든지 주게 하듯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사람을 존중한다는 것입니다.

26절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나도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베드로의 겸손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누군가가 진정으로 겸손하게 대하면 겸손이 겸손을 낳습니다. 진정 겸손한 마음과 행동이 있다면 겸손이 그 공간을 지배합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7절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이 모인 것을 보고 28절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베드로가 여기까지 오기가 쉽지 않았음을 말합니다. 유대인으로서 법을 어기면서 여기까지 온 것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것을 순종해서 온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내가 깨끗하다고 한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말씀입니다. 신앙은 나의 경험과 생각이 하나님과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의 보는 눈과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 속되다고 여기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깨끗하다고 인정할 때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가 보는 어떤 사람이 속되다 잘못되다고 여기는 것이 잘못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속되다 잘못됐다’고 여기는 것들이 잘못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저 사람은 문제있고 잘못되었고 틀렸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에 대해서 하나님은 속되지 않다고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이란 것입니다.

29절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부름을 사양치 않고 왔다는 것입니다.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고. 은혜가 되는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환상을 보았습니다. 환상 가운데 가이사랴의 사람들이 자기를 부름을 깨닫습니다. 베드로는 성령에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넬료가 자기를 부른 이유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왜 여기에 온지 몰랐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베드로, 예루살렘의 지도자인 베드로가 묻습니다.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고. 성령에 충만하면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번은 어떤 교인이 힘들다고 상담을 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다짜고짜 “목사님은 왜 제 문제를 모르냐”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제 기도를 안하고 계시지 않냐”라고 하더랍니다. “내 기도를 하고 있는데 왜 내 사정을 모르냐”고 말합니다. 성령에 충만하면 마음을 다 알고 점치듯이 맞추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령이 충만하면 내가 무지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내가 아는 것이 없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예지나 투시의 영이 아닌 순종의 영이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진정 성령으로 충만한 이는 “내가 아는 것은 없지만 부름을 사양치 않고 가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람을 만나면 허리를 굽히십시요. 겸손하게 대하십시요. 그럼 역사가 일어납니다. 항상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 분이 어떻게 보실까를 물으시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성령에 충만해서 겸손한 심령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요. 이럴 때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런 역사가 여러분의 삶 가운데 충만하게 일어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