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 중의 하나는 뭐니뭐니해도 은혜로운 예배이다. 그래서 흔히들 예배가 살아야 성도가 살고 예배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고 말한다. 예배는 그만큼 믿는 사람들의 삶에 있어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수 없는 일이다. 그러기에 당연히 목회자는 예배를 위해서 늘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하면 더 하나님께 영광이되고 예배자들에게 은혜가 되는 예배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다가 나는 습관처럼 예배에 일곱 가지가 충만하기를 늘 기도하는 버릇이 생겼다.

첫째는 하나님의 임재의 충만이다. 나는 영어로 이것을 임재하는 뜻의 Presence에다 가득하다는 뜻의 ful을 붙여 presenceful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하나 만들었다. 예배는 뭐니뭐니해도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해야 진짜 예배이다. 아무리 사람의 눈과 귀를 현란하게 할지라도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예배는 예배의 대상이 실종된 예배요 참 예배가 될 수 없다. 그래서 난 예배 가운데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친히 좌정하시기를 간절히 사모한다.

두 번째 임재하신 그 하나님을 향해 찬양이 충만하기를 기도한다. 나는 이것도 찬양이라는 Praise에 ful을 붙여 praiseful이라는 새 단어를 또 하나 만들었다. 우리의 예배는 예배 가운데 좌정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찬양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목적이다.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 그 사랑과 은혜를 우리는 만 입이 있어도 다 찬송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즉 진정한 예배자들은 온 맘과 온 몸으로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는 기도가 충만한 즉 Prayerful한 예배이다. 우리는 평소에도 늘 기도해야겠지만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 하는 예배 시간에 주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예배 중 대표기도만 있는 것이 아니라 통성기도도 있다. 하나님 앞에 우리 각자가 소리를 발하여 직접 기도하기 원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님의 충만한 임재 앞에 간절히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 앞에 열납되는 기도가 되리라 믿는다.

네 번째는 말씀 이 충만한 예배이다. 나는 이것을 예언이라는 prophecy에다 ful을 합해 prophecyful 하다는 말로 표현한다. 예배 가운데 임재하신 하나님은 침묵의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입을 열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광야에서의 만나처럼 우리에게는 영혼의 양식이다. 그런즉 참된 예배자들은 예배를 통해 전심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듣고자 하는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다. 예배를 통해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들은 귀를 간지럽게 하는 사람의 말이나 사상이 아닌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임재와 찬양 기도와 말씀이 충만한 예배에 반드시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그 능력의 충만함이다. 즉 Powerful한 예배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때 예배자들은 새 힘을 얻고 용기를 얻으며 새로운 비전에 충만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렇게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나타나면 모든 예배자 들은 기쁨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다. 즉 Joyful한 예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난 예배는 진지하되 즐거움과 감격이 가득해야 된다고 믿는다. 내가 아는 한 성경에서 보이는 예배의 장면은 대부분 그렇게 기쁨과 감격이 충만했다. 그리고 그런 기쁨을 누리면서 모든 예배자들은 다시금 주님을 향한 감사에 충만하게 된다. 즉 thankful한 예배이다.

나는 모든 진정한 예배자들의 예배는 이런 일곱 가지 충만함이 온전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예배와 예배자들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늘 이를 위해 습관적으로 기도한다. 여러분들의 예배에 이 일곱 충만의 은혜가 있는가? 단 한 분의 예배자도 예외 없이 모두 예배를 통해 이 일곱 충만의 은혜를 누리시기를 다시 한 번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