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너무 대가 세면 부러지고, 너무 약하면 줏대가 없다고들 한다. 때때로 대가 강할 필요가 있을 때가 있고, 또 비겁할 정도로 머리를 숙이며 자기를 낮추어야 할 때가 있다.

그래서 성경은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케 하겠느냐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며 우매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느냐" (전 7:16-17)고 권면하고 있다.

나는 야구를 참 좋아하고, 농구를 좋아한다. 야구는 중학교 때 학교가 야구팀이 있는 중학교에 있었고, 또 농구는 고등학교에 농구팀이 있었다. 미국에 와서는 봄에는 NBA 프로농구를 즐기고, 가을에는 MLB 프로야구를 즐긴다.

중학교 때는 한국일보에서 주최하는 봉황대기를 비롯하여 청룡기, 황금사자기등 여러 고등학교 야구대회가 있었다.

지금은 프로야구로 인해서 그 인기가 시들했지만 그 당시에는 고등학교 야구가 프로경기만큼이나 인기가 있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장효조, 최동원은 고등학교 야구의 전설 같은 선수였다.

야구대회가 있을 때 마다 야구중계를 라디오를 통해서 듣는 경우가 많았다. 타자가 투수의 공을 멀리 칠 때 아나운서의 중계 중 자주 사용하는 말이 “빨래줄처럼 공이 뻗어나갔습니다.”라는 말이었다.

그 ‘빨래줄처럼’이란 말이 참 인상깊게 들렸다. 공이 빨랫줄처럼 쭉 뻗어가지 않으면 야수에게 공이 잡힐 수 밖에 없다. 힘있게 공이 날아가야 결국 안타를 내게 된다.

빨랫줄은 팽팽해야 한다. 이 끝에서 저끝까지 잡아당겨주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빨래가 줄에 걸려 있지 못하고 땅에 끌리고 만다. 그래서 연약한 빨랫줄이 내려 오지 않기 위해서 가운데 장대를 세워두는 경우도 있다.

삶은 빨랫줄이어야 한다.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늘 변함없어야 한다.

신앙의 차원을 넘어서 지조와 정조, 그리고 배짱과 의리가 있어야 한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 곳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했다.

이 때 아브라함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그 땅을 떠나갔는데 성경은 그 때의 아브라함의 형편을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히브리서11;8) 라고 했고, 창세기에서는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라고 했다.

가야할 땅이 어디인지 모르는데도 말씀을 좇아간 것은 그 믿음이 빨랫줄이었던 것이다. 꺽이지 않고, 굽히지 않고, 약해지지 않고, 그 인생길을 걸어간 것이다.

인생의 불행은 방황에서 오는 것이다.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그 뜻이 분명하지 않을 때 고민이 생기고, 끝에는 아무런 열매를 얻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고무줄은 늘이고 싶으면 늘이고, 줄이고 싶으면 줄일 수 있다. 원숭이들에게 세 개, 저녁때는 네 개를 준다고 하니까 화를 내자 주인이 아침에는 네 개, 저녁에는 세 개를 준다고 화니 화가 풀렸다는 말이다.

원숭이도 어리석지만 그 주인은 정말 꽤가 많은 것이 분명하다. 때때로 이런 지혜도 필요하다. 그러나 너무 늘어져 탄력이 떨어진 고무줄은 쓸모가 없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耳懸鈴 鼻懸鈴)식의 삶은 현재의 상황은 피할 수 있어도 자기 것을 찾지 못하고, 끊임없이 안개의 길을 걷게 된다.

인생길이 한 번이라면 고무줄처럼 사는 것도 필요할 때가 있겠지만 그래도 빨랫줄처럼 팽팽할 필요도 있다. 성경의 모세처럼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는 꺾이지 않는 결단의 용기도 더욱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사람을 구원하는 의롭고, 믿음의 길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