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집에는 두마리의 개가 있습니다. 한마리는 어메리칸 에스키모 종으로 체구가 작고 날렵하며 성격은 조금 까칠한 그런 개입니다. 또 다른 한마리는 골든 리트리버 종으로 체구가 상당히 큰 데 반해서 행동은 좀 느리며 성격은 상당히 온순한 개입니다. 이 두녀석들은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밤에 잘 때도 같은 케이지 안에서 잠을 잡니다. 그리고 눈뜨는 순간부터 마당에서 하루종일 함께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두녀석들은 체구나 성격 둘 다 판이함에도 불구하고 한 배에서 태어난 형제 같습니다. 두 놈을 기르면서 재미있는 점을 많이 보게 됩니다.

두 녀석을 데리고 산책을 하노라면 서로를 챙기는 모습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아무 생각없이 걷는 것 같지만 녀석들은 서로의 존재를 자주 확인합니다. 한번은 길을 걷다가 훈련삼아 한 놈을 나무에 묶어두고 다른 놈만 데리고 훌쩍 가보았습니다. 당연히 나무에 묶인 녀석은 혼자만 남았음에 놀라서 낑낑거립니다. 그러자 저와 함께 걷는 다른 녀석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습니다. 뒤를 돌아보며 나무에 묶인 녀석을 향해 컹컹 짖으면서 그놈에게로 달려 가려 합니다. 재미있고 감동스럽기도 해서 두 녀석들의 상황을 바꿔 어찌하나 지켜보았는데 결과는 똑같습니다. 성격, 행동, 체구가 확연히 다른 개들이지만 같이 성장하다보니 서로를 친형제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챙겨주는 모습에 개들을 통해서 교훈을 얻습니다.

사람에 비해서 지능이나 모든 것이 열등한 개들도 배경, 조건, 성격, 체구등 모든 것이 아주 다름에도 불구하고 형제애를 나누는 것에 진한 감동을 받습니다. 하물며 사람들이 나누는 진한 형제애에 어찌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들도 여러 이유로 남남보다 못한 관계로 갈등하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진한 형제애를 나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사회학자들은 공존과 상생의 이유를 공통점에서 찾으려 합니다. 공통점이 많으면 많을수록 공존과 상생의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학설을 제시합니다. 그런 사회학적 접근으로 교회를 본다면 교회는 당연히 잘 될 수 있는 조건보다 잘 안되는 조건이 훨씬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통점으로 치자면 예수를 믿는다는 것 외에는 교회의 구성원인 성도들이야 말로 백인백색(百人百色)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현대처럼 분화된 사회에서는 연령이 다른 세대안에서 공통점을 찾으려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교회에서는 말들이 분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것이 당연시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진한 형제애를 나눌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은 없을까요? 저는 저희 개들을 통해서 중요한 방법 하나를 터득했습니다. ‘함께 하는 시간’이 관건이라는 것입니다. 함께 하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존재감의 깊이는 깊어질 수 있지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성격, 기질, 성향, 나이, 성별, 학력, 성장배경이 완전히 다르다 할지라도 함께 하는 시간의 차이에 따라 서로의 존재를 깊이 인정하며,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형제의 정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가설을 세워보았습니다.

사실 진한 형제애를 꼽으라면 초대교회를 배제할 수 없겠지요. 그런데 사회학적인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초대교회야 말로 공존과 상생의 조건에는 결코 부합될 수 없는 사회집단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컸던 사회적 신분의 상이점, 복잡한 민족구성원의 차이, 그리고 당시 사회적 통념상 엄연히 존재했던 성별의 차이등으로 형제애라는 성경의 핵심은 결코 실현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성령의 도우심 속에서 할 수 있는 한 함께 했습니다. 함께 예배드리며, 소그룹 모임을 가지며 일주일 내내 함께 했습니다. 그런 그들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서로를 향한 진한 사랑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숙명적 결정체가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함께하는 시간에 인색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예배와 더불어 진행되는 가지모임에 열심으로 참석합시다. 같이 하는 시간을 가능한한 늘려봅시다. 분명 진한 형제애가 샘솟듯 경험될 것입니다. 챙겨주고 보살펴주는 필연적인 정이 듬뿍 생성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