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에게는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세가지가 있다고 한다. 그 세가지의 기준을 히브리말로 ‘키스, 코스, 카스’라고 부른다.‘키스’라는 말은 돈주머니를뜻한다. 즉 돈 쓰는 법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돈을 잘 버는 것도 중요하고, 잘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보다는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 쓰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더 많이 쓴는가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단다. 즉, 그 사람의 인격과 삶의 가치는 돈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얼마나 잘 사용하는가를 통해 평가된다.

두번째 기준인 ‘코스’는 ‘잔’을 의미한다. 술마시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포도주는 늘 음식과 함께 먹는 식탁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즉 술은 어디까지나 음식으로 점잖게 마시고 점잖게 끝내야 하는데, 술만 들어가면 정신을 못차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술의 노예라 부른다. 이들은 술만 들어가면 소나 돼지 처럼 변하고 사리분간을 하지 못한다. 술 앞에 행동과 말이 절제되지 않는다. 인간이란 모름지기 음식에든 언동에든 절제의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술의 노예가 된 사람은 그것을 못한다. 그 사람의 인격과 삶의 가치는 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술에 대한 절제능력을 통해 알 수 있다.

마지막 세번째 기준인 ‘카스’는 분노와 관련된 단어이다.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다스릴 줄 아는 사람, 감정을 올바로 처리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바람직한 인격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제아무리 뛰어나다 할지라도 자신의 감정을 올바로 처리할 줄 모른는 사람이라면 제대로 된 인격자라 할 수 없다.이 감정을 제대로 처리 못해서 다 된 일을 그르친 사람들을 우리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나의 관심은 바로 이 세번째에 있다. 목사가 된 이상, 돈과 술의 문제 앞에는 늘 거리를 두고자 하는 노력 때문인지 좀처럼 돈과 술의 문제와 부딪힐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 세번째는 아직도 잘 안되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장 사랑하고 귀하게 여겨야할 가족들에게 불쑥 화를 낼때가 있다. 원하고 계획한 일들이 잘 진행되어지지 안을 때 내 자신에게 화를 낼때도 있다. 그러나 어디 이것이 나만의 문제이겠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단 성도가 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자의 길을 가는 도중에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문제가 바로 이 문제일 것이다. 이 문제는 사도 바울도 늘 사역을 하면서 해결하고자 했던 고민이었던 것 같다. 선교지 결정을 앞에 두고 사랑하는 선배 동역자와 의견 충돌로 갈라섰던 적이 사도 바울에게도 있었다. 원하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 자신의 분을 감추지 못하고 사도 베드로에게 대든 적도 있었다. 모세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악함 앞에 반석위에 자신의 지팡이를
내리치는 분을 발하였다.

예수를 믿은 후부터에 우리에게 나타나는 변화 중에 하나가 거룩이다. 거룩이란 더럽고 추한 죄의 본질속에 나타났던 옛 사람의 모습을 단절(카도시)하고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새사람의 옷을 입는 것이다. 이 새사람의 옷을 입는 자에게는 거룩의 능력이 나타난다. 거룩의 능력 중의 하나가 마음의 분노를 다스리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26-27절에서 이렇게 권면하고 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짖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왜 마음의 분노를 다스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된 성도들에게 중요한 부분일까? 그것은 우리가 성도가 된 이상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성령의 열매를 맺어 가도록 인도하시고 다스리신다. 그 성령께 순종하는 것이 바로 거룩을 실천하는 성도의 지름길이다. 성령께 순종하는 자에게는 성령이 원하시는 마음이 시작된다. 분노 역시도 성령의지배를 받는 순간 우리의 마음속에서 다스려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