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지혜”를 귀하게 여겼습니다. 지혜는 자기 민족의 미래를 밝혀주는 등불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지혜를 가진 사람들”을 한 개인이 아닌, 민족 전체의 자산(asset)이라고 여기고 “훗헴”이라고 부르며 귀하게 다루었습니다.

“훗헴”들은 많은 지식과 경험 그리고 뛰어난 식별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항상 겸손하고, 쉬지 않고 배우며, 고도의 도덕성을 지닌 인물들입니다. 특히, “훗헴”들 중에서도 “가장 지혜로운 사람”을 “탈미드 훗헴”이라고 불렀습니다(‘마빈 토케이어’의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고, 내일 죽을 것처럼 살아라”). 그는 말 그대로 정신적인 지도자입니다. “탈미드 훗헴”이 되는 사람에게는 모든 세금이 면제되고, 각 종 물품들이 할인되었습니다. 그에게는 갖가지 특권이 부여되었고, 국정에서 자문의 역할도 하였습니다. 국민들은 항상 그를 먼저 보호하고 지키는 것이 그들의 책임이고 사명이라고 믿었습니다. “탈미드 훗헴”은 공무원이나 행정직은 아니었지만, 권위와 영향력에 있어서는 수상 못지 않은 막강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탈미드 훗헴”은 지혜를 수단 삼아 막강한 권력을 누리는 또 다른 권력자 같은 느낌을 주지만, 사정을 좀 더 살펴보면, 꼭 그렇지 만은 않습니다. 누리는 것보다는 잃어버려야 하는 것이 배는 더 많습니다. 그는 항상 어려운 일, 궂은 일이 있을 때는 먼저 솔선수범해서 합니다. 군복무나 전쟁 같은 것도 제일 먼저 지원해 나아갑니다. 고난의 자리 첫 줄에는 항상 그가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바로 유대인들의 정신적인 지주이기 때문입니다. “훗헴”들은 누구나 희생과 헌신의 자리로 자원해서 나아갔습니다. 그것이 지성과 신앙을 가진 지도층의 사람으로서 반드시 지불해야 하는 대가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의 헌신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들 스스로가 자신을 “이스라엘의 주인”이라고 믿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가장 많이 수고하고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주인에게는 막중한 책임감이 있습니다. 소위 “특권층의 의무와 책임”이라는 뜻을 가진 “오블리스 노불리쥬”는 오직 주인에게만 기대할 수 있는 정신입니다. 나그네나 뜨내기는 절대로 흉내도 낼 수 없습니다. 그들은 희생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주인의 몫입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의 것이 아니면 책임지지 않습니다. 여행 중에 호텔에 투숙해서 수건이나 쓰던 집기들을 잘 정리해 놓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냥 아무데나 내 팽개쳐 버립니다. 자기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그네와 주인은 발상부터 다릅니다. 주권을 가진 국민들은 후손들을 위해 미래를 염려하며 책임 있게 살아갑니다.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민자들이나 방문자들, 그리고 불법체류자들은 절대로 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책임 있는 행동을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부평초(浮萍草)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과연, 저 사람이 이 공동체의 주인인가?”를 알아보려면 그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주인은 열린 마음으로 미래를 걱정하고 현재를 책임감 있게 살아갑니다.

“남도 누리는데, 왜 나만 희생해야 하느냐?”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주인이 아닙니다. 교회에서도 자원하여 헌신하고, 사람들을 믿음으로 인도하고, 그들의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고 권면하는 사람들! 예배를 소중히 여기며, 물질과 시간과 에너지를 기쁨으로 헌신하는 사람들! 청년들을 사랑하고, 노인들을 공경하는 사람들! 불평, 불만하는 사람들을 다독이고, 의기소침해 있는 사람들을 격려하며, 항상 웃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사람들! 그가 바로 교회의 주인입니다.
“당신은 주인입니까? 그냥 지나쳐 가는 손님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