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주의 날씨는 해가 지는 무렵이 최고인 듯 하다. 낮에 작열하던 태양이 언덕을 넘어 숨듯 열기를 내리노라면, 저녁노을에 긴 그림자 뒤로 선선한 바람이 낮의 더위를 식히듯 목을 감싸고 흘러간다. 리빙룸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소리에 그늘진 뒷마당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으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새벽이 제법 어둑해진 요즘 여름 날씨에도 쌀쌀함에 긴팔에 윗도리까지 걸치고 새벽기도에 나오지만, 낮에는 주차장이 프라이팬이 된 것 같은 느낌에 반팔에 반바지까지 입어도 덥다. 다시 해가 숨어 저녁시간이 되면 낮에 흘렸던 땀방울들이 구멍을 찾아 숨듯이 사라지고, 바쁘게 일했던 무더운 하루를 토닥이며 수고의 날개를 접는다. 이처럼 하루에도 여러 번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며 날씨에 반응하는 우리 인간의 모습은 편안한 듯하지만 또 한편으론 줏대도 없고, 심지어 간사하기 조차 하다. 낮에는 냉면이 먹고 싶다가, 저녁에는 감자탕이 먹고 싶고, 아침에는 설렁탕이 당기고, 점심 디저트는 팥빙수가 환상이다. 조석변이(朝夕變異)라는 말이 딱 캘리포니아 날씨를 두고하는 말이며, 변덕 심하고 중심이 없는 간사한 인간을 대변해 주는 말이기도 하다.

인간은 환경의 동물인가? 남가주 한인과 미동부의 한인도 좀 다른 것 같다. 미동부에서 대부분의 세월을 보낸 내가 이곳 서부 목회를 시작하면서 자주 들었던 질문이 동부 서부가 차이가 있냐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나의 대답은 거기가 거기고, 목회가 목회지 뭐가 그리 차이가 나겠냐는 것이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이곳 서부에는 던킨도너츠가 없음이 아쉽다고 웃었는데, 지금 남가주 목회를 만 6년을 채우면서 뭐라 형용할 수는 없지만, 동부와 서부는 참 다르다는 느낌이다. 환경의 다름은 변화가 있고, 당연히 다를 것이라 기대가 되지만, 같은 한국사람들이라 할지라도 흩어져 있는 지역의 환경만큼이나 다르다는 것을 요즘 많이 느낀다.

본래 성도는 동부 사는 한국사람이든, 서부 사는 한국사람이든, 아니 남미사람이든, 미국사람이든 환경에 지배당하는 자들이 아니라, 환경을 초월하는 자들이어야 한다. 성도들의 유일한 환경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성도들의 시작도 예수 그리스도시요, 성도의 변화도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요, 성도의 꾸준함과 성실함도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남가주의 조석변이의 날씨에도 항상 일정한 신앙생활을 하는 비결은 예수님 한 분만으로 사는 것 외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