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서정 세 번째는 회개와 믿음이다. 이 둘은 개종이라는 말의 양면을 뜻한다. 회개가 과거의 죄를 청산하는 것이라면,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는 것이다. 중생이 전적인 성령의 역사라면 회개와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의 주체 곧 복음을 듣고 마음으로 변화를 받은 사람에게 거듭남과 맞물려 수반되는 영적 현상이다.

회개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은 사람이 전심으로 하나님께로 돌아 가는 것이다. 히브리어나 헬라어나 원래의 문자적인 의미는 돌아 선다는 뜻이다. 이제까지 세상을 향해 달려 가던 삶의 방향을 180도 전환하여 하나님을 향해 나아 가는 것이다. 성경은 이런 회개를 “생명 얻는 회개”라고 불렀다 (사도행전 11장 18절). 여기서 “생명”이란 두 말 할 것도 없이 구원 받은 사람에게 주시는 영원한 생명이다. 그러므로 이 회개는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구원하시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혜이다.

회개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가 포함된다.

첫째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했다는 말을 들을 때, 성령께서 듣는 자의 심령 속에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성품을 의식적으로 깨달아 알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다. 영혼 깊은 곳에 이런 영적 변화가 일어나면, 그 사람은 자신이 범한 모든 죄들이 단순히 다른 사람이나 자신에게 악을 행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양심을 거스려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께 악을 행해 온 것이라고 하는 인식을 갖게 된다. 이 인식이 자신의 죄에 대하여 통애하며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회개의 측면은 시편 51편에 나오는 다윗의 회개의 기도 속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죄를 회개할 때 그는 그의 범죄함이 하나님에게 죄를 지은 것이었다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한다.

둘째로 자신의 존재와 인간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이다. 하나님을 알기 전까지는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분명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철학자들이 “사람은 무엇인가?” 라고 묻는 질문으로부터 “인생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를 묻는 대중 가요의 가사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자신을 발견하려고 발버둥치지만 거기에 대한 명쾌한 대답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마음으로 받고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게 되면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이 명료해 진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으로 받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하나님의 형상은 아담의 죄로 인하여 훼손되었고, 결과적으로 죄와 저주 아래서 고통을 당하며 신음하는 죄인이다. 이 인식의 변화가 구세주를 갈망하게 한다.

셋째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의 변화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참으로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한 형벌의 죽음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이 사실은 정서적으로 마음 속 깊이 죄인으로 산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양심을 거스르는 죄책감에 대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을 쏟아 내게 한다. 동시에, 자신을 대신하여 스스로 십자가의 죽음을 자초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서는 죄의 무거운 멍에를 벗어 버리게 된 홀가분함과 함께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감사와 빚진 마음을 가지게 된다. 자신의 죄때문에 울고, 예수님의 은혜때문에 웃고, 하나님의 사랑에 빚진 마음때문에 자신의 남은 삶에 대하여 신중해 진다. 이런 인식의 변화가 죄악된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의지적인 결단을 내리게 하는 것이다.

믿음은 무엇인가? 회개가 죄악으로 물든 옛사람을 벗는 것이라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완성된 하나님의 의, 곧, 예수 그리스도를 덧입는 것이다. 새사람, 새로운 피조물이란 다름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옷입은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이 믿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이 믿음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가 포함된다.

첫째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에 대한 인식의 변화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무죄를 증명하는 것일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참으로 의로운 분이었다고 하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진정한 의미에서 대속적인 죽음이었다고 하는 것을 마음으로 받아 드림과 동시에 예수님의 의가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예비하신 구원의 방편이라고 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알고 인정하는 것이다.

둘째가 하나님의 구원은 전적으로 예수님의 의에 기초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인정하고 신뢰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형벌을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온전히 세우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또 하나님께서 용서하신 죄인을 의인으로 간주해 주시는 것은 그 사람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 때문이라고 하는 것을 전심으로 의지하는 것이다.

셋째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이 자신의 의가 되었다고 하는 것을 인정함으로 이제 자신은 더 이상 죄의 영향력 아래 있는 죄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영향력 아래 있는 의인이 되었다고 하는 것에 의식적으로 동의하고, 의지적인 결단과 행동하는 삶을 통하여 그것을 확증하는 것이다. 몸은 여전히 죄의 영향력 아래 있으므로 죄의 유혹과 싸워야 하는 상황 속에 놓여 있지만, 영혼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은 새사람으로써 죄의 유혹을 뿌리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이 명하는 선과 의를 행할 수 있는 상태 속에 들어가 있다고 하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입증하는 것이다.

요약하면, 회개와 믿음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에게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심령의 변화이다. 회개가 옛사람을 벗는 것이라고 하면 믿음은 새사람을 입는 것이다. 회개가 죄를 씼는 의식적인 영혼의 활동이라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는 의식적인 활동이다. 중생의 주체가 성령이라면 회개와 믿음의 주체는 복음을 통하여 거듭난 바로 그 자신이다.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가시적인 회개와 믿음의 현상들이 반드시 성령으로 말미암아 중생한 증거라고 주장 할 수는 없지만, 성령으로 말미암아 참으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그 심령 속에 하나님을 향한 회개와 믿음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다음 글: 구원론 (구원의 서정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