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오나라에 '제갈근'이라는 학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동생은 소위 '제갈공명'으로 알려진 너무도 유명한 '제갈양'입니다. 삼국지의 주인공인 촉한의 왕 '유비'를 도왔던 지략가입니다. '제갈근'은 '제갈양'처럼 화려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매사에 신중하고 사려가 깊은 인물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제갈각'(諸葛恪)이라는 6살 먹은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총명하고 지략이 뛰어나 왕이었던 '손권'에게 평생 동안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한번은 아버지를 따라 궁에 들어 온 '각'을 '손권'이 놀려볼 심산으로 신하에게 당나귀 한 마리를 데리고 오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당나귀의 목에 '제갈근'의 이름인 '제갈자유'라는 글자를 붓으로 썼습니다. '제갈근'의 얼굴이 유난히 길어서 생김새가 마치 당나귀와 비슷했기 때문에 그런 장난을 친 것입니다. 옆에 있던 중신들이 여기저기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난처한 '제갈근'도 얼굴의 빨개져서 겸연쩍게 서 있었습니다.
손권과 모든 신하들은 어린 '각'이 과연 왕이 자신의 아버지를 당나귀에 비유한 곤란한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각'은 한 치의 동요도 없이 당나귀를 바라보다가 붓을 들어 '제갈자유'라는 이름 뒤에 '지려'(之驢), 즉 '~의 당나귀'라는 글자를 써 넣었습니다. 그러자 졸지에 '제갈근의 당나귀'라는 뜻이 되었습니다.

손권은 감탄해서 그 당나귀를 '제갈각'에게 선물로 주었다고 합니다. 실추된 아버지의 명예도 회복하고, 능청스럽게 재산까지 증식시키는 어린 '제갈각'의 총명함을 보면서 손권은 '남전생옥'( 藍田生玉), “남전에서 좋은 옥(玉)이 난다더니 역시 그 아비에 그 아들이다”하면서 크게 기뻐했다고 합니다.

명문 가문에서 걸출한 인물이 나오고, 좋은 배경과 환경 속에서 뛰어난 영재들이 배출됩니다. 특별한 유전자나 혈통 속에서 그 원인을 찾기 보다는 성장배경이나 교육철학에서 그 답을 찾는 것이 더 옳을 것입니다. 뛰어난 학자 밑에서는 학자가, 그리고 뛰어난 상술(商術)을 지닌 부모 밑에서 좋은 기업인이 배출될 확률이 높습니다. 자녀들 중의 70%이상이 부모의 직업을 계승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어렸을 때부터 보고, 듣고,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생김새뿐만 아니라, 사고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방식도 학습을 통해 그대로 유전됩니다.

심지어는 부모를 반대하고 거부하는 자녀들조차도 가랑비에 옷 젖듯이 무의식중에 부모를 그대로 따라 합니다. 어떤 아들이 화를 잘 내는 아버지에게 “아버지, 제발 화 좀 내지 마세요!”하면서 화를 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식은 부모의 성적표라고 합니다. 아들은 대부분 아버지를 닮고, 딸은 어머니의 모습을 거의 빼 다 박습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가문(家門)과 가훈(家訓)을 중요시 여긴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교회를 주도하는 전반적인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이 있습니다. 이것들이 쌓이고 반복되면서 역사와 전통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그것은 교회의 미래를 인도하는 가치관이 됩니다. 교회의 전통은 고스란히 그 '이름' 속에 담기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교회의 이름을 듣게 되면, 단번에 그 교회의 이미지가 떠오르고, 자동적으로 그 교회가 몇 점짜리 교회인지 점수를 매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전통은 무엇일까? 우리 교회는 역사적으로 어떤 일들을 해 왔으며, 주변에 어떤 영향력들을 만들어 왔을까?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우리에게 믿음의 유산을 남겨 준 분들은 어떤 분들이고 어떤 유산을 남겨 주었을까? 그것을 제대로 말 할 수 없다면, 우리는 아마도 우리의 '자랑스럽다'는 역사와 전통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역사와 전통이라는 말이 그냥 '시간의 흐름' 만을 이야기하는 평범한 단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혼(魂)이며 삶의 철학입니다. 전통은 언제나 우리가 서 있는 '현재'를 통해 '미래'의 후배들에게 흘러가는 살아있는 '과거'입니다.

'남전생옥'(藍田生玉)!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볼 고사 성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