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새벽예배. 한국교회 부흥의 첫 번째 원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척교회부터 대형교회에 이르기까지 성도들의 신앙성숙과 더불어 부흥을 소망하는 곳에는 새벽예배의 열기가 더욱 뜨겁다. 이에 기독일보는 남가주 한인교회들의 새벽 설교를 집중 조명하여 새벽제단에서만 내리는 특별한 은혜를 나누고 개교회를 넘어 지역과 미주 전역의 부흥을 함께 소망하고자 한다.

가든그로브에 위치한 오렌지카운티영락교회의 담임 김경섭 목사는 새벽강단에 나오는 성도들을 향해 선교 사역자라고 이야기 한다. 모두 잠자는 이른 새벽에 나와 주를 찬양하고 기도하고 예배하는 것이 왠 만한 각오와 결단이 있지 않고는 힘들기 때문이다. 김경섭 목사는 무더운 7월 말에 가진 새벽강단에서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성숙한 언어생활에 달려 있다.”라며 “성령께서 혀를 길들여 무의식 중에서라도 찬송과 축복과 감사를 말을 하자. 또한 기쁨과 행복을 전해주는 말을 하도록 하자.”고 성도들에게 권면했다. 다음은 말씀 요약문.


<야고보서 3장 1-2절>
당신의 입을 거룩하게 하라

우리는 말을 사용하면서 일생을 살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많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하루에 말할 수 있는 단어 수에 있어서 남자와 여자가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어느 통계에 보면 남자는 하루에 2만 단어를 말하고 여자는 3만 5천 단어를 말한다 합니다. 남편은 직장에서 돌아왔을 때 2만 단어를 다 썼는데, 아내는 아직 1만 5천 단어가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그 남아 있는 1만 5천 단어를 사용하려니까 잔소리가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이런 모습이 있잖아요? 여자들은 전화통화를 1시간 넘게 하고도 끊으면서,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만나서 몇 시간을 실컷 이야기하고 헤어지면서 '집에 가서 전화 할께.' 라고 하지요. 이렇게 말을 많이 하면 실수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선생이 되려는 사람들에게 말에 대해서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약3:1절 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이 말은 정말로 선생이 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 말속에는 참된 지도자가 되는 것은 정말 어렵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생은 부득이 하게 말을 많이 하게 되는데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실수 하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누가 가장 많이 실수할까? 당연히 말을 많은 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가장 많은 말을 하지요? 목사입니다. 강단에서 설교하는 목사입니다. 그래서 목사는 실수할 때가 많습니다. 혹시나 여러분이 섬기는 교회의 목사님께서 말로 실수 한 것이 있다면 용서해 주십시오. 목사님이나, 말을 많이 하게 되는 분들이 혹시 실수를 하게 되면 연약한 인간이니까? 하는 마음을 갖고 기도해 주시는 것이 필요합니다.

야고보가 고백한 것처럼 우리는 말에 실수가 많습니다. 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저는 2절에서 가장 은혜가 되는 단어를 꼽으라면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라고 하지 않고 "우리가"라고 하는 말은 야고보서를 쓰고 있는 야고보 자신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동생입니다. 그는 경건과 영성에서 누구보다도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야고보가 나도 말에 실수가 있다고 고백합니다. 저는 이 말씀에 참 위안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저와 여러분은 말에 실수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가 연약한 사람인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의 실수에 대해서 열 받고, 화를 내면서 저 인간은 원래 저래 하면서 비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말씀에서도 "만일 누구든지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면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말에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오직 말에 완전한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윗이 시편141:3에서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라고 기도한 것처럼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성령께서 내 입을 다스려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알고 계십니까? 우리의 말 한마디가 가정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교회를 살리기도 하고 아프게도 합니다. 우리의 말 한마디가 교회를 부흥시키기도 하고 정체하게도 만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말 한마디가 환경을 바꿉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힘으로는 우리의 입술을 지킬 수 없고 길들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성령께서 함께하시면 우리의 혀는 길들여 지는 줄 믿습니다. 이를 위해서 내 입을 다스려 주시옵소서!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거룩한 입으로 어떤 말을 해야 합니까? 어느 날 젊은 두 양반이 고기를 사러 왔습니다. 그 중 한 양반은 습관대로 "야, 만득아! 고기 한 근 줘라"라고 말했습니다. 만득이는 "네"하며 고기를 한 근 내 주었습니다. 다른 양반은 "박 서방, 고기 한 근 주게"라고 부드러운 말로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고기는 언뜻 봐도 먼저 산 양반의 것보다 훨씬 더 커 보였습니다. 똑같이 한 근이라고 말했는데 차이가 나니까 먼저 고기산 양반이 화가 나서 따졌습니다. "이놈아, 같은 한 근인데 이 양반의 것은 많고 내 것은 왜 이렇게 적으냐?" 그러자 만득은 당연하다는 듯 이렇게 말했습니다. "손님 것은 만득이가 자른 것이고, 저 손님 것은 박서방이 자른 것이기 때문에 그렇지요." 건방진 말 한마디 때문에 화가 나기도 하구요, 겸손한 말 한마디가 인격과 신앙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겸손의 언어가 여러분의 거룩한 입에서 나오시길 원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신앙생활에 언어생활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개인과, 부부와 가정은 물론이고 교회의 모든 문제가 언어생활에서 생겨납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모습도 온전한 교회의 모습도 성숙한 언어생활에 달려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언어가 성숙해야겠습니다. 성령께서 혀를 길들여 무의식 중에서라도 찬송과 축복과 감사를 말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기쁨과 행복을 전해주는 말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겸손을 전해주는 입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주신 거룩한 입술로 긍정의 말과 축복을 전해주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