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경제학자 신영복 선생께서 서예를 배우면서‘서예는 조화’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글자를 쓰다가 잘못되면 서예의 특성상 고칠 수 없기에 다음 글자를 통해서 그 실수를 보완하려 한다는 것이다. 한 획을 쓰다가 좀 뉘어지면 다른 획을 세워서 그 획에 잘못된 것을 고쳐가는 동안, 잘못된 한 획 한 획이 모여 온전한 한 글자가 된다는 것이다. 글을 쓰다가 한 행이 잘못되면 다음 행으로 보충하고, 한 연이 잘못되면 다음 연에서 바로 잡으면서 한편의 아름다운 글이 만들어지는 것이 서예의 맛이라고 한다. 부분 부분이 모두 정확하게 이루어진 것보다 이렇게 실수와 실수, 거기에 대한 보상과 보충의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 글은 훨씬 정감이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귀한 깨달음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서예의 조화가 꼭 우리의 신앙의 모습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으로 이 땅을 산다는 것은 천국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가 영원히 거할 본향은 저 천국이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목적을 위해 이 땅을 사명자로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서 우리는 완성시켜야 할 인생의 사명들이 있다. 이 사명은 마치 종이 위에 한자 한자 정성된 글씨를 써내려 가는 서예의 과정과 비슷하다. 이때 일어난 실수는 결코 우리의 인생의 작품을 망치거나 중단해야 할 걸림돌이 아니라, 다시금 보상되고 보충되어 아름다운 사명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디딤돌 곧 조화의 한 부분일 뿐이다.

그 실수를 보상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사명의 현장이 생각만큼 진전되지 않을 때도 있다. 때로는 그 실수를 보충하기 위해 인생의 깊은 고뇌 가운데 홀로 그 문제와 씨름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순간을 보상하며 보충하기 위해 애를 쓰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지나온 인생의 순간순간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어느덧 굴곡진 내 인생의 구비구비가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를 위한 아름다운 작품이 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이 깨달음 때문에 사도 바울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라는 말씀을 전한 것아다. 이 말씀을 통해 사도 바울은 로마 제국의 그 처절한 고난과 박해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사는 자에게는 아름다운 결과가 있음을 잊지 말라고 외치고 있다.

인생의 굽이굽이마다 일어났던 실수와 아픔들이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사는 우리 성도의 삶에는 결코 올무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운 선을 이루어내고야 마시기 때문이다. 우리 성도는 이 땅을 밟고 살지만, 우리는 이 땅에 속한 자가 아니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천국의 백성이다. 천국 백성으로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위해 달려가는 한 우리의 눈물과 희생은 결코 무의미하게 사라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과 희생을 하나님 나라를 위한 디딤돌이 되게 하신다. 이것이 천국 백성이 이 땅을 사는 동안 놓치지 않고 살아야 할 천국 백성의 의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