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지진이 발생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가정을 잃은 아이티(Haiti)에 단기아웃리치를 다녀왔습니다. 제가 아이티에 갔을 때는 지진이 발생한 지 이미 7개월이 지났지만 아이티는 지진 복구가 과연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처참했습니다. 그들은 아프고 고통스러운 현장에서 슬픔에 익숙해진 모습으로 하루하루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티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이미 다 무너졌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살고 있는 제 속사람을 발견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12월 31일. 갑작스레 부모님을 동시에 잃고 동생과 저는 기둥이 주저앉아 버린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동생 그리고 저. 그 슬프고 막막한 중에 불현듯 ‘이제부터 내가 이 집안의 가장이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11살 되던 추운 겨울에 가장으로서 처음 한 일은, 아버지 사망신고였습니다.

원래 저는 부모님이 애타게 기다리던 중에 태어난 귀한 딸이었습니다. 활발하고 명랑했던 저는 엄마아빠 없다고 놀려대는 친구들의 철없는 장난에 점차 의기소침해지고 자신감을 잃어갔지만 부모 없는 애라서 그렇지, 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 공부를 열심히 했고 생활도 잘 꾸려나갔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모델 일을 시작하면서, 점차 학업은 멀어졌고 급기야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면서 학교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위기에 처해졌습니다. 그때 할아버지께서 친구 부모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이 아이는 부모도 없는 아이인데 제발 고등학교라도 졸업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머리를 숙이고 사정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상황을 만든 자신이 얼마나 싫었는지...

그렇게그렇게 어렵사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에이전시와 함께 모델로서의 커리어를 본격적으로 쌓아갔습니다. 부모의 후원을 기대할 수도 없고 인맥도 없고 특출 난 외모도 아니었기 때문에 저는 좋은 성격과 끼로 승부하는 모델이 돼야 했고, 그래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웃으면서 인사성 좋고 유쾌하고 주어진 역할을 꼭 해내는 사람이 됐습니다.

에이전시에서 만들어준 도회적이고 시크한 이미지에 갇혀 그 이미지가 진짜 제 모습인 것처럼 살아갔습니다. 가슴앓이와 깊은 눈물을 감추고 겉모습을 포장해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하는 것이, 불안정하고 불안한 내 일상이고 삶이었습니다.

목사님이신 삼촌과 고모 가족을 통해 신앙을 배웠고 기도의 빚을 지고 있었지만, 치열하고 경쟁적인 모델계에서 인정을 얻으려고 하다 보니 점차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교회생활도 뜸해지고 “교회 다니니?”라고 물으면 “아니요.”라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습니다. 크리스천이란 것을 숨기고 거침없이 그 화려한 모델계의 문화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나 성공하게 해주세요. 더 성공하면 교회 잘 다닐게요.”라면서 제 성공과 필요를 위해 하나님께 떼를 썼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때 저는 제가 그토록 원하던 큰 성공을 경험했습니다. “아! 교회 안다녀도 돈 잘 버네, 난 역시 능력자야.” 라면서 스스로 얼마나 뻐기고 높아졌는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내면이 무너져 있고 교만한 저에게 무관심한 분이 아니였습니다. 모델 일과 개인적으로 추진했던 프로젝트가 술술 잘 풀리자 저는 높아진 마음에 결정적인 실수를 하게 됐고 그것을 통해 그동안 얻었던 재정, 커리어, 사람을 홀랑 잃어버렸습니다. 이 사건은 제 영혼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비계 덩어리를 떼어내는 계기가 됐고, 화려한 모든 관계들이 정리되는 기회가 됐습니다.

또 하나님을 어색해할 때마다 가족을 통해, 당신께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부모님을 잃고 할머니 할아버지 동생 그리고 제가 단촐하게 살고 있을 때, 고모부의 사업이 기울면서 우리는 고모 가족과 함께 한 가족으로 살게 됐습니다. 고모부의 사업이 기운 것은 시련이었지만 그 기회로 동생과 저는 든든한 가족을 선물 받은 것이었습니다.

지적 장애인이었던 동생은 가장이라는 책임감 위에 돌 하나를 더 올려놓는 듯한 짐이고 아픔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가족은 끊임없이 함께 가르쳤고 기도했고 사랑했습니다. 지금은 애완견과를 졸업한 평범한 청년으로 자랐고,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 가족의 눈물과 간절함을 긍휼히 여기셔서 보여주신 기적입니다.

목사로 교회를 섬기고 있는 삼촌은 묵묵히 저를 위해 기도해주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면서도 상처로 인해 불안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을 때, 삼촌은 늘 제 마음의 든든한 울타리였습니다. 기도해주시는 삼촌을 생각하면서 탕자처럼 돌아오고 다시 돌아오고 했으니까요.

무엇보다 할머니는 제게 할머니뿐만 아니라 엄마이고 아버지이자 친구입니다. 남들 다 누리는 부모 사랑 없다고 칭얼거릴 때는 보이지 않았지만, 눈을 들어 보니 저는 더 큰 가족을 선물 받았습니다. 부모의 빈자리는 그 어느 것으로도 채울 수 없지만, 저는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가족 그리고 삼촌 가족을 통해 다른 사랑을 더 깊이 체험하고 있고 그 속에 살고 있습니다.

잊으려고만 했던 과거, 말하고 싶지 않았던 가족의 아픔. 그러나 그 과거가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것이고, 이토록 여리고 상처투성이 인생에 찾아오신 하나님의 긍휼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제 그 긍휼을 입은 제가, 사랑이 간절한 사람들의 외로움과 아픔을 가슴으로 느끼고 그들을 돕고 싶습니다.

작년 여름에 지진 트라우마로 신음하고 있는 아이티를 다녀오면서 그들과 함께 울었고 “그 나라에 희망을 주고 그 사람들이 살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내가 그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는, 어린 시절 꿈꾸었던 선교사의 삶을 향해 새로운 막이 열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미래를 향해 나아갑니다. 나의 서재에 꽂아두어야 할 책들은 무엇으로 정할까? 책 만이 아니라 아름다운 그림도 걸어두어야 하는데... 지금껏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것들을 버리려고 발버둥치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을 발판 삼아 하나님과 함께 그릴 새로운 그림을 기대해봅니다.

출처: 낮은울타리(www.wooltar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