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8:2-3)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아담과 하와와 그 자손들이 하나님 자신과 함께 영원히 해복하게 살기를 원하셨다. 그러므로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절대 따먹지 말라고 명려하셨고 따먹는 날에는 정령 죽으리라 하셨다.(창2:16-17)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부모)에 대한 순종이며 영생과 사망의 요소들을 포함한 하나님의 사랑의 언약이었다. 이 행위언약을 아담이 실패하므로 은혜의 언약으로 예수그리스도가 오시어 구속언약을 완성시키시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랫동안 인류의 구원을 꿈꾸어 오던 하나님은 드디어 구원사역을 시작 하셨다. 이스라엘 민족이 수가차고 때가 차 노예의 고통의 신음소리가 높아질 때 하나님은 그들을 유월절을 통하여 애굽에서 끌어내셨다.

애굽의 노예생활보다 더 악조건인 황량하고 광활한 사막으로 끌어내셨다. 그곳은 인간이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곳이 하나도 없는 곳이다. 고립무원의 고도였다. 인간의 힘으로 살아 갈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곳이다. 오직 죽음뿐인 곳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곳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끌어내시고 성막을 지으라고 명하신 다음 그 성막을 중심으로 생활하게 하셨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바로 유월절을 통한 구원의 언약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한 방법이요 한 과정임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성막 안에는 예수그리스도가 오셔서 구원 사역을 하시기 전까지의 전 과정을 그림자로 보여 주시는 비밀이 있기 때문이다.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만나야 되는데 그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는 안 보이신다. 배부르고 등 따뜻하여 이 세상에 기대고 의지 할 곳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더욱 안 보인다. 그래서 아무것도 의지 할 곳 없고 나는 내 힘으로 아무것도 나를 위해 할 수 없다고 자기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찾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요 그때 비로소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다. 그래서 광야로 끌고 나온 것이다.

고립무원의 광야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요, 구원의 장소요, 기독교영성의 문이다. 그러므로 광야의 영성을 배워야한다. 비로소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하나님의 영성인 그분의 마음을 알게 되고 그분께 의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광야에 들어오니 그분의 도움이 일분일초도 없으면 살수가 없음을 느낀다.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시고 존귀하시고 엄위하시지만 사랑이 많으신 분인 것을 비로소 알고 깨닫게 된다.

광야의 사막에서는 한시도 그분의 도움이 없으면 펄펄 끓는 뜨거운 태양아래서 다 타 죽을 수밖에 없고 밤에는 급격하게 떨어지는 추위에 얼어 죽을 수밖에 없다. 나무 한그루 없이 그늘도 없고 물 한 방울 없는 그곳에서 어찌 살 수 있겠는가? 농사를 지을 수 있는가? 모래와 돌과 엉겅퀴와 전갈과 불 뱀과 들짐승이나 돌아다니는 그곳에서 집을 지을 수 있을까? 무엇하나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조건이 아무것도 없는 곳이다.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으면 모두 죽는 곳이다.

그런데 그곳으로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기 택한 백성을 끌어 내셨다. 그것은 전적으로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었다. 그곳에 와야 비로소 하나님을 발견하고 만나고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낮에 뜨거운 태양 아래서 살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구름기둥으로 지켜주셨던 하나님의 은총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밤에는 불기둥으로 지켜주셨고 먹을 것 하나 없어 울부짖을 때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셨고 고기가 먹고 싶을 때 메추라기 고기를 먹게 해주셨고 물이 없어 한탄할 때 물을 주셨다. 옷도 해어지지 않았고 신발도 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비로소 그들 속에 자신과 함께 하나님이 동행하시고 계심을 알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신명기 8장2절부터 6절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을 광야에서 40년간 훈련시킨 이유에 대하여 패역한 그들을 낮추시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시험하시며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도를 순종하고 행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동행케 하시려 함이라고 하셨다.

바로 기독교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함께 동행 하는 생활이다. 항상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생활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자녀들을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그들을 죽음(지옥)에서 건져 구원에 이르게 하시기를 원하신다. 영생을 얻어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천국에서 사시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죽을 수밖에 없는 광야 세상에서 허상인 물질만능과 부귀영화의 망상에서 깨어나 하나님 앞으로 나오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그래서 광야로 불러내신 것이다. 광야생활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부르시는 사랑의 첫 신호탄임을 깨닫고 그분의 마음을 알아가는 것이 큰 은혜요 축복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