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수용소에 갇힌 어린이 2천5백 명을 구해낸 폴란드 여성이 명예시민에 추대된다. 올해 97세인 이레나 센들로바(Irena Sendlerowa) 여사는 가톨릭 교인으로 나치군이 바르샤바에 유대인수용소를 만들던 1940년경에 그곳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었다.

센들로바 여사는 사회복지사들에게 지급되는 유대인수용소 출입증을 이용해 수용소에 자유롭게 드나들며 기아에 허덕이는 수용소 유대인들에게 식량과 생필품을 보급했다. 1942년 7월 나치군이 바르샤바 수용소 유대인들을 트리블링카 강제수용소로 보내 대량학살하기 시작하자 그녀는 동료 복지사들과 함께 부모들을 설득해 수용소 어린이들을 몰래 빼내기 시작했다.

앰뷸런스와 하수구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통해 수용소 밖으로 구출한 어린이들은 부모들이 찾아올 때까지 센들로바 여사와 동료들이 운영하는 구호시설에서 머물렀다. 센들로바 여사와 동료들은 어린이들에게 가톨릭 의례를 가르쳤다. 센들로바 여사는 당시 수용소에서 구출됐던 유대인 어린이들의 인적 사항과 실명을 유리병에 넣어 땅에 묻어뒀다. 전쟁이 끝난 후 수용소에서 구출된 어린이들은 이 명단을 통해 자신의 가족들을 찾을 수 있었다.

2005년 BBC와의 인터뷰에서 센들로바 여사는 아이들을 빼내기 위해 부모를 설득하는 과정이 가장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대개 아버지들은 아이를 데려가라고 허락했지만 어머니 또는 할머니들은 아이를 안고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녀 자신도 아이들을 수용소 밖으로 빼낸다고 무사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설득에 실패할 때도 있었다. 그녀는 “부모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돌아온 다음날 수용소에 가보니 하룻밤 사이 가족들이 모두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1943년 10월 센들로바 여사는 유대인을 도왔다는 혐의로 게슈타포 본부에 끌려가게 됐다. 그녀는 다리를 부러뜨리는 고문을 받으면서도 동료들의 이름이나 구출된 아이들의 이름을 누설하지 않았고 결국 사형선고를 받았다. 사형이 집행되던 날 센들로바 여사는 동료들이 미리 매수한 독일군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풀려나게 됐는데 독일군은 이 사실을 모르고 그녀가 총살됐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센들로바 여사와 동료들이 구한 유대인 어린이는 2천5백 명으로 영화 ‘쉰들러리스트’로 잘 알려진 독일인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가 구한 1천 명의 두 배가 넘는다. 그녀는 사람들이 자신을 ‘영웅’이라고 부르는 것이 불편하다며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도리이며 나는 작은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