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지리적인 관점에서의 가나안 땅 이해(I)

4. 열악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중심 무대가 된 가나안

열악한 자연 환경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틴이 역사에서 중심을 이룬 까닭은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가 팔레스틴에서 만나며 고대 문명이 이곳을 지났기 때문이다. 이런 지정학적인 위치로 말미암아 팔레스틴은 세계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였다. 대륙이 연결되며 문명이 교차되는 팔레스틴에는 중요한 국제도로들이 발달되었다. 이 도로들을 중심으로 무역 상인들이 지나갔으며 제국들이 세력을 떨치기 위해 팔레스틴을 통과해 갔다.

이곳을 지나는 국제 도로들은 해변 길과 왕의 대로가 있다. 지중해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해변 길은 이집트 실레(Sile)를 출발 시나이 사막을 지나 약 240km 지점의 가사를 거쳐 팔레스틴으로 들어선다. 해변 길은 출 13:17에는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사 19:23에서는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 (the Highway out of Egypt to Assyria)인데, 후에는 해변 길(Via Maris)로 불렸다. 고대 이집트 문서에는 이 길을 가리켜 매 (falcon)의 머리를 하고 몸체는 사람인 이집트의 전쟁 신 호루스의 이름을 따라 ‘호루스의 길(the way of Horus)’이라 불렀다. 가사를 지난 해변 길은 블레셋 평야, 사론 평야에서 이스르엘 평야를 지나 북쪽 페니키아 지역으로 또는 하솔을 거쳐 다메섹으로 또는 동쪽 트랜스 요르단을 거쳐 다메섹, 레바논의 베카, 그리고 사막의 중요한 오아시스인 다드몰 (Tadmol)과 메소포타미아까지 연결할 수 있다.

가나안의 여러 도시들은 해변 길을 중심으로 발달되었으며 이곳은 팔레스틴의 숱한 역사의 현장이 되었다. 해변 길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을 거쳐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왔던 아브라함이 그 해의 흉년을 피해 이집트로 피신하였을 때 이용했던 길이며 (창 12) 형들의 시기를 받은 요셉이 도단에서 잡혀 물이 없는 구덩이에 던져져 결국은 이집트로 종으로 팔려갔던 길 역시 해변 길이었다 (창 37). 야곱 역시 이집트의 총리 대신이 된 요셉의 후광으로 이집트로 내려갔던 길도 해변 길이었다. 신약 시대에 베들레헴에 태어나신 예수님 역시 헤롯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때 이용하셨던 길 역시 해변 길이었다 (마 2). 이 길은 고대 문서에도 자주 등장한다. 주전 1468년 이집트의 바로인 Thutmose 3세는 유프라테스 지역의 미타니(Mitanni) 제국을 향한 원정 길에서 완전 무장한 군사들과 함께 이집트 실레를 출발, 가사까지 240km의 거리를 무려 9-10일 걸려 지났으며, 가사에서 야함까지의 거리 120km에 이르는 블레셋 평야와 사론 평야를 12일 걸려 행군하였다는 기록을 읽을 수 있다. 군사들, 약대 상인들 그리고 많은 순례자들이 지났던 해변 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해변 길에 이어 또 하나 중요한 국제 도로는 왕의 대로(King's highway)이다 (민 20:17, 21:22). 왕의 대로는 이스라엘의 출애굽 과정에서 처음으로 소개되었지만 한편으론 대로(the highway)로도 불렸으며(민 20:19) 특히 왕의 대로 북쪽은 바산길(the way of Bashan)이라 불리기도 했다 (민 21:33, 신 3:1). 트랜스요르단의 높은 고원을 따라 에일랏에서 북쪽 다메섹까지 연결된 왕의 대로는 근동의 중요한 무역로였다. 아라비아의 여러 지역에서 생산된 진귀한 향료와 보석들을 트랜스요르단의 중요한 도시들을 각 마을로 전달되었다. 왕의 대로를 따라 일어난 성경 밖의 전쟁 기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 14장에 기록된 한 고대의 전쟁 기사를 통하여 왕의 대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엘람 왕인 그돌라오멜을 중심으로 연합한 북쪽의 네 왕들은 왕의 대로를 따라 반역한 다섯 도성들을 상대로 군사적인 원정을 감행하였다. 연합군들은 바산의 수도인 아스다롯과 그 변방도시인 가르나임에서 르바족속을, 길르앗 북쪽인 함(현재 요르단의 도시 이르비드에서 남서쪽 약 6.4km 지점) 에서는 수스 족속을, 모압 고원의 샤웨 기랴다임(기랴다임은 수 13:19에 르우벤의 도성)에서는 엠 족속을, 그리고 에돔 산지의 세일에서는 엘 바란에 이르기까지 호리 족속을 공격하였다. 엘 바란에서 연합군들은 방향을 돌려 엔미스밧 곧 가데스바네아까지 진격하여 아말렉 족속을, 그리고 하사손다말인 엔게디에서는 아모리 족속을 습격하였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사항은 이 전쟁은 왕의 대로를 따라 형성된 대표적인 도시들을 중심으로 군사들이 이동되었다는 점이다: 바산, 길르앗, 모압, 에돔-세일 그리고 멀리 아카바 만에 위치한 엘랏까지 언급되었다.

왕의 대로에 대한 또 다른 기록은 민수기와 신명기에서 찾을 수 있다. 민수기 20:19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으로 향한 여정에서 에돔 족속의 반대로 신명기 2:8절의 “에서의 자손을 떠나 아라바를 지나 엘랏과 에시온 게벨 곁으로 지나 행하고 돌이켜 모압 광야 길(the way of the wilderness of Moab)”로 진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이 상하게 되었고 결국은 불뱀의 공격으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민 21:4-9). 이 부분은 학자들마다 이동 경로에 약간의 견해 차이가 발견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트랜스요르단의 대표적인 도시들은 왕의 대로를 따라 건설되었다: 바산의 나베, 가르나임과 아스다롯, 길르앗의 라못 길르앗, 거라사, 그리고 욕브하, 암몬 족속의 수도인 랍바 암몬, 아모리 족속의 수도였던 헤스본, 모압 고원의 메드바와 디본, 에돔 지역에서는 셀라와 보스라가 있다. 트랜스요르단에서 이집트로 향하는 두 개의 도로가 있다. 하나는 모압과 에돔을 구분하는 세렛 강에서 서쪽으로 내려와 신 계곡을 따라 가데스바네아까지 그리고 여기에서 다시 수르 광야를 따라 이집트로 향하는 길이다. 또 다른 하나는 에돔 산지의 남쪽 끝 닿은 엘랏에서 바란 광야를 지나 현재의 수에즈 운하 근처를 지나 이집트로 향하는 길이다. 그러므로 왕의 대로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서로 연결하는 '도로'라는 측면에서 해변 길에 비하여 크게 돌아서 연결되었다. 이와 같이 해변 길과 왕의 대로는 근동에서 팔레스틴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팔레스틴이 역사의 중심 무대가 된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곳을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약속의 땅(창 15:18)으로 주셨기 때문이다. 그 약속은 수 백 년이 지난 출애굽 사건 이후 여호수아에 의한 군사적인 점령으로 말미암아 성취되었고 다윗에 의해 확인되었다(삼하 24:5-9). 그러므로 팔레스틴은 유대인들의 꿈과 이상이 현실로 실현된 객관적인 표상인 것이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과거 다윗이 이루었던 영광을 꿈꾸며 회복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들은 다윗의 영광을 생각하며 현대 이스라엘 국가의 기대를 남쪽의 나일강에서 북쪽의 유프라테스까지를 이스라엘의 영토라는 이념을 국기에 새겨두었다. 현대 이스라엘 국기는 가운데 다윗 별이 있고 그 위 아래로 두 개의 파란 선이 그려져 있다. 또한 팔레스틴은 하나님의 시선과 관심이 머무는 땅이기 때문에 역사의 관심이 되어 왔다 (신 11:12). 성경은 이 땅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로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신 11:11-12).

이 본문이 전달하는 직접적인 의미는, 가나안 땅은 사시사철 언제나 하나님의 절대 주권 하에 있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제 가나안은 약속의 땅이라는 개념에서 한 차원 뛰어넘어 종교적인 관점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시험하고 훈련하는 믿음의 장이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이 땅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머물렀으며, 하나님의 사람들이 사역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곳이라는 점이다. 더우기 팔레스틴에서 인류 구원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 땅은 인류의 관심과 시선이 머무르기에 충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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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섭 목사(멤피스장로교회)는 성경의 사실적 배경 연구를 위해 히브리어를 학습하였고, 예루살렘 대학과 히브리 대학에서 10여년에 걸쳐 이스라엘의 역사, 지리, 고고학, 히브리인의 문화, 고대 성읍과 도로를 연구한 학자이다. 그는 4X4 지프를 이용하여 성경의 생생한 현장을 연구하기도 했다. 문의 jooseob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