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하기로 유명한 분석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에게는 모차르트가 다시 살아온 것 같다는 찬사를 들었던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인”이란 형이 있었다. 한 사람은 분석철학의 천재요 다른 한 사람은 음악의 천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파울은 1차 대전에 참전했다 부상당해 오른손을 잘라내야 했다. 오른손이 없는 피아니스트는 상상할 수 없으므로 피아니스트로서의 그의 생은 끝장났던 것이다. 그 자신뿐 아니라 세상이 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10여 년 동안 방황했지만 운명에 굴복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그는 아는 작곡가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을 위해서 왼손만으로 칠 수 있는 피아노곡을 작곡해달라고 부탁했고, 그의 청에 응해 왼손만으로 연주할 수 있는 피아노곡을 작곡해준 작곡가는 “모리스 라벨”이었다.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D장조”가 바로 그 곡이다. 이 연주가 성공하자 그 이후로 많은 작곡가들이 그를 위해 왼손만을 위한 곡들을 만들어주었고 두 손이 다 있는 연주가들도 왼손만으로 그 곡들을 연주하게 됐다. 한 손만으로 연주하는 피아노곡이 무려 1천곡이나 된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또 한 사람이 있다. 2002년 미국의 신경과 의사들이 모이는 신경과학회 학술대회장 자리에서 의사도 아니고 의학자도 아닌 피아니스트 “리온 플라이셔(Leon Fleisher)”가 공로상을 받았다. 피아니스트가 신경과학회가 주는 공로상을 받는 일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닌데, 그 사정은 이렇다.

플라이셔는 여덟 살 때 연주회를 가졌을 정도로 1백 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천재 피아니스트란 말을 들었던 연주가이다. 플라이셔는 열여섯 살의 나이에 뉴욕 필과 협연했고 열일곱 살 때 카네기 홀에서 독주회를 가졌을 정도로 앞날이 창창했던 그에게 30대 초반에 짙은 구름이 드리워졌다. 오른손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결국 서른여섯 살에 음악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실의에 빠져 있지않고 왼손 피아니스트 비트겐슈타인을 본받아 지휘자로 컴백했고 나중에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피아노 교수로 활동했다. 그리고 발전된 의학의 도움을 받아 1995년에는 드디어 오른손으로도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됐던 것이다. 그래서 낸 음반이 <두 손 Two Hands>이란 제목의 음반이다. 그는 열심히 연주활동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신경계통의 병을 세상에 올바르게 인식시키는 홍보대사 역할도 열심히 했다. 신경과학회 공로상은 이 활동 때문에 받았던 것이다.

이 두사람 외에도 신앙없이 신념만으로도 고난을 실패의 어머니로 삼지않고 오히려 성공의 어머니로 삼은 예는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고난의 승리는 일생의 승리 혹은 이생의 승리는 될 수 있을지 모르나 영생의 승리 영원의 승리는 될 수 없는 것이다. 고난주간을 앞두고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해야 이 세상에서 받는 고난들을 근본적인 승리 곧 영원의 승리로 이끌 수 있는지에 대하여 묵상하는 한 주간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