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인간이 좋아하는 단어를 3가지만 들어보면 사랑, 행복, 구원일 것이다. 이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 하나면 선택하라고 한다면 대부분 구원을 택하는데 그 이유는 생명을 잃는다면 사랑이나 행복이 아무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원은 육적구원과 영적구원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이 구원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성경에서는 육적 구원도 말하고 있으며, 영적구원도 다 말하고 있다. 그러나 궁극적인 구원은 영적 구원을 말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성경은 육체적으로 한쪽 눈이나 한쪽 팔을 잘라 내고라도 천국에 가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한다. 성경은 예수님을 믿으면 죽지 않고 영생을 얻고 천국에 간다고 가르치고 있다.

또한 죽어 무덤 속에 있던 자들 까지도 주님이 재림하실 때 무덤에서 일어나 부활 할 것을 말하고 심판을 통하여 지옥과 천국으로 갈라져 영생한다고 한다. 인간들의 지적 능력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믿겨지지 않는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것을 증명키 위하여 예수님으로 이 땅에 오셨다. 또한 인간이 부활할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죽은 지 3일 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여 이 땅에서 40일 동안 증거하시다가 승천하셨다. 성경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무덤 속에 있던 인간들이 부활하여 영생에 이른다는 말을 인간들이 믿을 수 있는가? 인간들은 과학으로 증명되고 실제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들을 무엇으로 설득하고 이해시킬 수 있겠는가? 그것은 실제로 보여주는 방법 밖에는 없다.

주님은 십자가상에서 죽으신 다음 세마포에 꽁꽁 쌓여 돌무덤 속에 장사되었다. 손과 발에 대못이 박혔다 빠진 자리가 찢어지고 헤어져 살이 붓고 상해있고 창으로 찌른 심장도 다 상해있는 그대로 세마포로 꽁꽁 묶여 장사 지냈으니 그곳이 곧 부패되고 썩어 구더기가 났을 것이다. 그런데 그분이 첫째 3일 만에 시신에 감겼던 베를 풀고 살아나셨다는 것이다. 둘째는 썩고 상했던 상처나 죽었던 시력과 청력, 촉감 등 기능들이 멀쩡하다는 것, 셋째는 시공을 초월하여 행동하신다는 것이다. 부활되신 예수님은 죽기 전 예수님이 아니라 특수물질로 변화되신 것을 알 수 있다. 3차원의 사람이 아닌 4차원이상의 어떤 물질로 변화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 예수님이 변화된 모습으로 40일이나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은 예수님 재림 때 무덤 속에 있던 영들이나 살아 있던 자들까지도 들림을 받을 때 예수님이 부활하여 특수물질로 변화된 것처럼 모두 변화되어 부활할 것을 표증으로 보여 주신 것이다. 바로 이 부활된 사람들이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며 사는 것이다.

그런데 이 천국의 구원은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천국은 믿음이 없으면 갈 수 없는 곳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믿음이나 가지고 아무 길로 다 갈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곳에 갈 수 있는 방법과 길에 대하여 아주 구체적으로 알려 주셨다. 그것이 바로 성막이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하면 이스라엘 민족에게 40년 동안이나 성막생활을 통하여 훈련시키고 오늘날에 와서도 주님이 오실 때까지 교회를 통하여 역사하시겠는가!

이 성막에는 천국에 이르는 5단계의 관문에 대하여 잘 설명하고 있다. 구원에 이르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가는 것이나 여기에는 구원에 이르는 단계가 있는데 이것을 구원의 서정이라고 한다. 이 행위의 다리를 건너지 못하면 우리가 바라는 구원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바로 성막은 이 구원에 이르는 5단계를 말해주는 비밀이었다.(출26,27)

우리가 믿음으로 건너야 할 행위의 다리는 첫째 회막문 다리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양의 문으로서 오직 이 문으로서 구원에 이르게 되는 유일한 은혜의 통로이다.

둘째는 회개의 다리를 건너 들어가는 성막뜰이다.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첫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졌느니라”고 외치셨다.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해야 할 행위가 회개이다. 왜냐하면 회개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죄인인 내가 죽어야 할 자리에서 내가 살기 위해 죄 없는 어린 양에게 죄를 뒤집어 씌어 내가 그 양을 죽여야만 되는데 아무리 악한이라도 양심의 가책과 두려움으로 회개가 나오지 않겠는가?

셋째는 번제단의 다리인데 이 다리를 건너 활활 타오르는 번제단에 내가 죽였던 어린양의 시체를 각을 떠서 무섭게 타오르는 번제단에 모든 죄의 티끌까지도 태워버리는 것이다. 바로 이 행위의 다리는 신약에 와서 골고다 언덕 위에 십자가상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것으로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보혈의 피로 죄씻음을 받고 죄가 없다고 칭함을 받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네 번째 다리는 물두멍으로 가는 다리이다. 이 물두멍은 성소에 들어가기 전 제사장들이 마지막 손과 발을 씻는 곳으로 신약에 와서는 내가 새롭게 거듭나 세마포 옷을 입고 신랑 되시는 성령님(주님)을 만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섯 번째 다리는 성소와 지성소로 들어가는 다리이다. 성소는 천국을 의미하는데 이곳은 하나님이 계신 궁궐로 하나님의 아들 혼인 잔치에 초청된 자들만 들어가는 곳이다. 신약에 와서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시던 순간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 막았던 휘장이 갈라지며 하나가 되었던 것처럼 오늘날 신학적 의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죄가 있어 갈라놓았던 것을 신랑인 예수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하나가 된 것을 말한다. 즉 이제 신랑 예수와 연합되어 한 몸이 되어 이 땅에서도 동행하며 지상천국을 누리다 마지막 심판 때에 실제 천국을 가게 된다.

상합의 원리

성막을 통하여 우리가 보았듯이 어느 한 단계만 이루었다고 그것이 완성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어떤 목적지까지 가려면 그때그때 마다 통과하고 지나가야 하는 단계가 있다는 것이다. 즉 천리길도 Step by Step인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원리를 에베소서 4장 16절에서 인체에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즉 각 마디의 지체들이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해도 그것 하나만으로 온몸이 세워지지 않는 것처럼 구원도 ‘입술로 믿습니다’라고만 해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단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단계가 서로 상합(相合)하고 합력(合力)하여 한 단계 한 단계 Up Grade되어 나갈 때 믿음의 분량이 자라나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즉 성경은 롬8:28에서도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씀 하셨다.

하나님은 이러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원리들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 즉 성막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열쇠요 믿음의 성장원리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