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세상”이라는 말이 있다.
좀 더 격하게 표현하면 “밥을 XXX으로 먹는지” 라며 거꾸로 가는 세상을 향해 탄식을 하기도 한다.
여기서 거꾸로 간다는 말은 “무법(無法)” 또는 “무질서(無秩序)”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즉 모든 피조물이 창조주 섭리에 따라 자기자리와 위치를 지키지 않고 떠나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일컬어 타락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이처럼 날로 타락하여 부정-부패(不淨腐敗)해가는 세상에서 개혁[改革re-form]과 갱신[更新update]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사전적 의미로는 새롭게 고치거나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여 보충하는 것으로 해석을 하였다.
타락한 세상이 아무리 개혁과 갱신을 부르짖으며 어떤 모범 모델을 제시하고 특별한 방법을 제안한다 할지라도 시대를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지금까지 성공한 사례는 고사하고 오히려 역행(逆行) 즉 거꾸로 가는 부패 현상만 가중될 뿐이었다.

그렇다면 원인이 무엇일까?
문제는 본질이 아닌 비본질 즉 겉으로 드러난 구조(構造)만을 다루려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이 개혁과 갱신을 소극적, 부분적, 비본질적 해결책이라고 한다면 보다 적극적, 근본적, 본질적 해결책은 “본디 있던 자리” 즉 “원위치”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원위치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세상의 본디 있던 자리가 어디인가를 먼저 알아야겠다. 성경은 본질인 이 세상의 원위치에 대해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세상”(창1: 31)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결론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세상”으로의 회복(回復)이다. 피조물들이 각자의 위치와 자리를 지킴으로 창조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 질서회복을 위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에 교회를 세우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무질서하여 타락한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자기 본래의 자리로 “원 위치”하라고 말씀하신다.

최근 한국 연예인들의 자살(自殺suicide)소식이 매스컴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그것도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는 낯 뜨거운(?) 기사와 더불어 몇몇 댓 글(reple)이 소개되었는데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이 무섭다” 고까지 표현하였다. 성경에도 이처럼 자살한 인물들이 있다. 사울 왕과 가룟 유다라는 사람들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 역시 자신의 자리와 위치에서 떠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멀어지고 단절된 상태였음을 확인 할 수 있다. 그 밖의 실제로 자살을 시도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욥의 고백이라든지
[욥기7:15] "이러므로 내 마음이 뼈를 깎는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숨이 막히는 것과 죽는 것을 택하리이다"

또한 이세벨의 핍박에 지친 엘리야의 탄원
[왕상19:4]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그리고 요나의 투정(?) 정도가 있다.
[요나 4:3]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어찌 보면 누구에게나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방황하고 고민하여 때로는 심하면 자살충동으로까지 반응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성경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자살을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아울러 정말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은 종말적이고 완악한 세태 가운데 세상의 타락한 문화와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창조문화인 기독교적 가치관을 양립한 채 감성적(영적과 다름)으로는 하나님을 찾지만 현실적으로는 돈과 명예를 찾고 세상 속에 흐르는 유행과 정신에 지배받아 결국 타락한 세상에 기대어 탈출구로 의지하는 세속적 속물 교인들이 도처에 난무하다는 현실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는데 있다.

이것은 타락한 세상을 회복하라고 세우신 교회가 점점 거꾸로 가고 있는 현실의 한 단면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교회들에게 아니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한마디 고하고 싶다.

“도대체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로 전하고 듣는 것인지!”